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11월 9일부터 10일까지 단 이틀 만에 진행된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Coup of 18 Brumaire)'를 통해 프랑스 제1공화국의 통치 기구였던 총재정부(Directory)를 장악하며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쿠데타 이전의 상황: 흔들리는 총재정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공회(National Convention)는 1792년 제1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17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섯 명의 총재로 구성된 행정부, 즉 총재정부는 군사적 패배, 경제 불안정, 만연한 정치 부패 등 수많은 위기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혁명 전쟁에서 탁월한 군사 지휘관으로 명성을 쌓아온 나폴레옹은 이 혼란을 권력 장악의 절호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그는 총재정부의 일부 인사들과 입법부 상원인 원로원(Council of Elders) 의원들과 은밀히 공모하여 쿠데타 계획을 세웠습니다.
브뤼메르 18일 쿠데타의 진행 과정
1799년 11월 9일 — 정부 소재지 이전 결의
나폴레옹의 동생 뤼시앵(Lucien Bonaparte)은 입법부 하원인 오백인회(Council of Five Hundred) 의원으로서, 정부 소재지를 파리에서 도심 외곽의 생클루(Saint-Cloud)로 옮기자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이전 작전의 군대 지휘권을 맡게 되었습니다.
11월 10일 — 생클루 장악과 원로원 설득
나폴레옹과 그의 부대는 생클루를 장악하고 입법부 회의장을 포위했습니다. 그는 원로원 앞에서 "공화국이 위험에 처했다"며 비상 권한을 요청했고, 원로원은 이를 받아들여 새 정부를 수립할 임시 권한을 그에게 부여했습니다.
오백인회와의 대립
하지만 나폴레옹은 훨씬 저항적인 오백인회와 마주하게 됩니다. 동생 뤼시앵은 길고 긴 연설로 회의 진행을 지연시키며, 나폴레옹이 충성 병력을 규합할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이윽고 회의장에 들어선 나폴레옹은 의원들의 거센 적대감에 부딪혔고, 일부 의원은 그를 직접 공격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척탄병의 투입과 의회 해산
나폴레옹은 척탄병들에게 회의장을 비우라고 명령했습니다. 척탄병들이 회의장에 진입해 의원들을 몰아내면서 오백인회는 사실상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제1집정관의 탄생
양원이 모두 무력화되자 나폴레옹은 신속히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그는 임시 정부를 구성했고, 이후 제정된 새 헌법은 국가 권력을 '제1집정관(First Consul)'이라는 직위에 집중시켰으며, 나폴레옹이 바로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는 사실상 프랑스 혁명의 종식을 의미했으며, 나폴레옹을 실질적인 프랑스의 통치자로 만든 집정정부(Consulate)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쿠데타는 나폴레옹 권력 상승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고, 1804년 그가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