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잉글랜드 왕위를 둘러싼 세 명의 주요 경쟁자
1066년 잉글랜드의 왕위는 세 명의 강력한 인물이 서로 다른 근거를 들며 주장하면서 격렬한 분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대결은 결국 헤이스팅스 전투로 이어졌고, 잉글랜드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
해럴드 고드윈슨은 당시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으로, 앵글로색슨 귀족들의 회의체인 '위탄(Witan)'에 의해 새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이 임종 직전 그에게 왕국을 맡겼다는 기록도 있어, 그의 즉위는 잉글랜드 내부에서 상당한 정당성을 인정받았습니다.
2.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William, Duke of Normandy)
윌리엄은 에드워드 참회왕의 먼 친척으로, 에드워드가 생전에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왕위를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해럴드가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자신에게 구조된 뒤 왕위 계승을 지지하겠다고 맹세했다고도 주장하며, 자신의 권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3. 노르웨이의 하랄드 하르다라다(Harald Hardrada)
'강철의 통치자'라는 별칭을 지닌 하랄드 하르다라다는 유능하고 강력한 바이킹 지배자였습니다. 그는 노르웨이 왕 마그누스와 덴마크 왕 하르타크누트 사이에 체결된 상호 상속 협정을 근거로 왕위를 요구했습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어느 쪽이 먼저 사망하면 살아남은 쪽이 상대의 왕국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하르타크누트가 잉글랜드 왕이 된 후 1042년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마그누스와 그의 후계자인 하랄드에게 잉글랜드 왕위를 요구할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세 주장의 결말
세 사람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1066년 단 한 해 동안 벌어진 전쟁을 통해 운명이 갈렸습니다. 해럴드 고드윈슨은 스탬포드브리지 전투에서 하랄드 하르다라다를 격파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윌리엄에게 패배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윌리엄이 '정복왕 윌리엄'으로 즉위하며 잉글랜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