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5년 8월 22일에 벌어진 보즈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 Field)는 잉글랜드를 30년 넘게 혼란에 빠뜨린 내전, 이른바 '장미 전쟁'의 상징적인 종막을 알린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리처드 3세가 패배하고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가 승리하며, 헨리는 헨리 7세로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헨리 7세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장미 전쟁은 잉글랜드 왕위를 두고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 사이에 벌어진 오랜 권력 다툼이었습니다.
요크 가문 출신의 리처드 3세는 조카들이자 요크 가문의 정당한 후계자였던 '탑의 두 왕자'가 의문스럽게 실종된 뒤 논란 속에서 왕위에 올랐습니다.
헨리 튜더의 왕위 계승권
헨리 튜더는 랭커스터 공작 존 오브 곤트의 직계 후손인 마거릿 보포트의 아들이었으며, 그의 계승권은 랭커스터 계통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헨리의 왕위 주장은 리처드 3세를 불법적인 찬탈자로 여기던 반대파 귀족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보즈워스 전투의 전개
헨리는 군대를 규합해 프랑스에서 출항하여 웨일스의 밀포드 헤븐에 상륙했고, 잉글랜드로 진군하는 동안 웨일스 귀족들과 지주들의 지지를 얻으며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리처드 3세는 헨리의 침공 소식을 접하고 군대를 소집하여 레스터셔주 마켓 보즈워스 인근의 보즈워스 벌판에서 헨리의 군대와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전투는 양측의 돌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리처드의 군대가 우세하여 존 새비지 경이 지휘하는 헨리군 선봉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헨리의 승리
결정적인 순간, 어느 편도 지원하지 않고 관망하던 토머스 스탠리 경이 마침내 헨리의 편에 서서 병력을 이끌고 전장에 합류했습니다.
증원군을 확보한 헨리의 군대는 공세를 재개했고 전투는 한층 치열해졌습니다. 리처드는 직접 말을 몰아 전투에 뛰어들어 헨리를 직접 노렸으나, 오히려 헨리의 호위 부대에 포위당하고 말았습니다.
리처드는 말에서 떨어진 채 전사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랭커스터 군은 최종 승리를 거두었고 헨리 7세는 정당한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헨리 7세의 즉위
보즈워스에서 승리한 헨리는 런던으로 진군하여 왕위를 공식 선포했고, 1485년 10월 30일 헨리 7세로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권력 기반을 다지고 양대 가문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의 딸이자 실종된 왕자들의 누이인 엘리자베스 오브 요크와 혼인했습니다. 이 결혼은 요크와 랭커스터의 계승권을 하나로 통합시키며 장미 전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헨리 7세의 유산
헨리 7세는 100년 넘게 잉글랜드를 통치하게 될 튜더 왕조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의 통치는 오랜 혼란 이후 안정과 평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금 제도 개편과 같은 헨리의 현명한 정책들은 왕국의 재정 안정을 회복시키고 왕권을 크게 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보즈워스 전투는 헨리 튜더가 리처드 3세를 물리치고 장미 전쟁을 종식시킨 잉글랜드 역사의 중대한 분수령이었습니다. 헨리의 승리는 오랜 대립을 청산하고, 튜더 왕조 아래 더욱 통합되고 번영하는 잉글랜드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