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벨베데레: '간도에 계곡' 돌파

절벽의 굴뚝길, '간도에 계곡'

9중대의 왼쪽 방면에서는 조르디(Jordy) 중위가 지휘하는 11중대가 리오세코(Rio Secco) 강 건너편에서, 전날 간도에(Gandoët) 지휘관과 함께 미리 물색해 두었던 협곡 입구를 발견한다. 이미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 골짜기를 '간도에 계곡'이라 불렀다. 협곡의 입구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에 난 굴뚝 같은 통로였지만, 다행히 양쪽 벽이 병사들을 감싸 주는 역할을 했다. 조르디 중위는 이 좁은 통로로 몸을 들이밀며, 분대 단위로 병력을 하나씩 자신의 뒤로 끌어올렸다.
경사가 워낙 가팔라 오르는 길은 고단했다. 소총과 예비 탄약은 물론, 전투에 쓸 박격포탄까지 짊어진 병사들은 순식간에 지쳐 버렸고, 어느새 짐을 나르는 짐승처럼 변해 있었다.

새벽, 목표는 눈앞에

동이 트자 일행은 마침내 열린 지형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조르디 중위는 서서히 밝아오는 지평선을 눈여겨 살피며 공략해야 할 목표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려 했다. 목표들은 이미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다. 바로 그때, 간도에 지휘관이 파견한 제10중대 예비 소대 두 개가 조르디 중위에게 합류했다.
두 소대 가운데 하나는 부아카즈(Bouakaz) 소위가 이끌고 있었다. 그는 엘하디(El Hadi)와 친분이 깊은 사이로, 지난밤 그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었던 터였다. 조르디 중위는 부아카즈 소위에게, 인상적인 능선인 862 고지 바로 앞에 있는 '무명봉'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를 가리켰다. 대대의 목표인 862 고지는 그만큼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부아카즈 소위의 맹세와 전사

부아카즈 소위는 즉시 '가장 먼저 그곳에 오를 영예'를 내놓으라고 나섰다. 그러기 위해 그는 측면 우회 기동을 감행해 먼저 무명봉에 교두보를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경보가 울려 퍼졌고, 방어군 역시 경계 태세에 돌입한 뒤였다. 은폐 진지(카제마트)를 수류탄으로 무력화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부아카즈 소위는 무명봉에 발을 딛는 순간 적의 화망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참담한 소식은 오히려 산병들의 투지를 불태웠다. 병사들은 생전에 '가장 먼저 도달하겠다'고 맹세했던 부아카즈 소위의 시신을 안고, 862 고지를 향해 총돌격을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