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공식 후계자, 옥타비아누스
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즉 옥타비아누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카손주이자 양자로서, 카이사르의 공식적인 후계자였습니다. 그는 카이사르 사후 혼란스러웠던 로마 정치판에서 권력을 장악하며 훗날 초대 로마 황제로 군림하게 됩니다.
카이사르와의 관계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누나 율리아의 손자, 즉 카이사르의 조카손주였습니다. 카이사르에게는 적법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젊고 유망한 옥타비아누스를 자신의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내정했습니다.
법적 상속인이 되다
기원전 44년 3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의원들의 암살을 당했을 때, 그의 유언장에는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입양하고 재산의 주요 상속인으로 지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법에 의해 카이사르의 법적 상속인으로 인정받았고, 양부의 이름을 물려받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였습니다.
권력 장악과 초대 로마 황제 등극
막대한 정치적 유산과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권력 다툼 끝에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격파하며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27년,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존칭을 받으면서 옥타비아누스는 사실상 초대 로마 황제가 되었고, 로마 공화정을 종식시키며 제정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그의 통치 아래 로마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 불리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