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키 코헨(Mickey Cohen, 본명 마이어 해리스 코헨, 1913년 9월 4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 1976년 7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사망)은 이탈리아 마피아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유대계 갱스터였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로스앤젤레스 조직범죄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초년기: 잡상인에서 권투 챔피언까지
미키 코헨은 1913년 9월 4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묘비에는 1914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머니 파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916년부터 1919년 사이 그녀는 자매 릴리와 어린 미키를 데리고 로스앤젤레스 보일 하이츠 지역으로 이주해 잡화점과 약국을 운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을 버렸다. 여섯 살의 미키는 형 해리와 루이가 내려준 자리에서 신문을 팔며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미키와 형제들은(샘을 제외하고)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으며, 불법 무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몸싸움도 서슴지 않는 진짜 밀수꾼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1923년, 아홉 살이 된 미키는 몰래 증류소로 변신한 집안 약국의 손님들에게 술을 팔다가 처음 체포되었지만, 형의 인맥 덕분에 곧바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밀주 판매를 계속했다.
싸움에 능숙해진 소년기가 지나자 미키는 불법 권투 시합을 주최하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이후에는 동부 해안에서 활동했다.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프로 페더급 권투 선수(키 165cm)로 시합 제의를 받았고, 클리블랜드의 토미 폴을 비롯한 실력파 선수들과 맞붙었다. 다만 토미 폴에게는 1라운드 TKO로 패배하기도 했다.
조직범죄와 마피아와의 만남
주목받는 갱스터이자 권투선수로 이름을 알린 코헨은 조직범죄 두목들의 눈에 들었다. 강렬한 존재감과 재치를 갖춘 그는 마피아에 고용되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모 달리츠(Moe Dalitz)의 동료인 루 로스코프(Lou Rothkopf)를 만났고, 이후 동부 해안 뉴욕으로 돌아가 토미 디오구아르디(Tommy Dioguardi), 조니 디오(Johnny Dio), 오우니 매든(Owney Madden)과 함께 일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 중부의 중심지 시카고로 향했다.
1920년대: 금주법 시대
당시 알 카포네는 술을 포함한 여러 밀거래를 통해 시카고를 장악하고 있었다. 미키 코헨은 알 카포네의 조직인 '시카고 아웃핏'의 집행자로 일하며 도박판 관리를 전문으로 담당했다. 엉망이 된 도박판에서 여러 갱스터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희생자들은 카포네에게 빚을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 카포네는 자신의 영향력으로 코헨을 신속히 석방시켰고, 코헨은 다시 카드 게임 모임과 각종 불법 도박을 조직했다. 이후 알의 남동생 매티 카포네(Mattie Capone)의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제이크 구직(Jake Guzik) 밑에서도 일했지만, 자신이 연 도박에서 패배하면서 시카고를 떠나 클리블랜드로 가야 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코헨은 마이어 랜스키(Meyer Lansky)와 벅시 시겔(Bugsy Siegel)의 동료인 루 로스코프를 위해 다시 일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에서는 할 일이 많지 않았고 카포네 일파와 여러 차례 충돌하면서, 결국 서부 해안의 로스앤젤레스로 발령받게 된다.
신디케이트 경호원에서 로스앤젤레스의 실질적 수장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이어 랜스키와 루 로스코프는 코헨에게 벅시 시겔을 보좌하는 임무를 맡겼다. 시겔 역시 동부에서 눈 밖에 나 있던 처지였다. 함께 활동하는 동안 코헨은 이탈리아인들이 통제하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플라밍고 호텔 건설에 참여했다.
1947년, 범죄 조직들은 플라밍고 호텔 경영 실패와 자금 유용(본인 또는 여자친구 버지니아 힐이 자금을 횡령했다는 명목)을 이유로 시겔의 살해를 명령했다. 코헨은 친구이자 동료의 피살 소식에 분노했고, 복수를 위해 살인자들을 수소문했다. 그들이 루즈벨트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현장에서 두 사람을 쏘고 천장을 향해 난사한 뒤 "10분 안에 밖으로 나와 만나자"고 외쳤다. 그러나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경찰이 도착하자 코헨은 도주해야 했다.
다만 이 사건은 코헨의 연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시겔이 죽자 그는 라스베이거스 도박 관제의 유일한 수장이 되는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전성기, 로스앤젤레스의 두 왕 중 하나
이탈리아 마피아는 시겔을 제거함으로써 로스앤젤레스 조직의 수장을 없애고 직접 통제권을 장악했다. 드라그나(Dragna) 가문의 프랭크 카보(Frank Carbo)가 도시를 관할하게 되었다. 예전부터 이 마피아와 협력해 온 미키 코헨은 도박 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계속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방식은 결국 드라그나 클랜의 활동을 조사하던 연방 당국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다.
이 시기 코헨은 여러 차례 암살 위협에 직면했으며, 일부는 법 집행 기관이 배후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브렌트우드의 고급 주택가 모레노 애비뉴에 위치한 그의 저택은 폭탄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는 집을 요새로 개조했다. 탐조등과 경보 시스템, 무장을 완비한 무기고를 설치했는데, 그는 농담처럼 이 무기고를 "200벌의 맞춤 정장 옆"에 두었다고 말했다.
미키 코헨은 배우 존 스톰파나토(Johnny Stompanato)를 잠시 경호원 겸 운전기사로 두기도 했다. 스톰파나토처럼 그도 여색에 밝아 헐리우드 배우부터 스트립 댄서까지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여성들과 어울렸다. 아내를 자주 배신하긴 했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녀는 비할 데 없는 숙녀였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며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코헨은 끝내 재혼하지 않았다.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아내의 죽음은 그의 몰락의 시작이었다.
1950년, 코헨은 수많은 범죄자들과 함께 의회 청문회의 조사 대상이 되었다. 조사위원회는 탈세 혐의로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고, 그는 4년을 복역했다. 워싱턴 주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간수들과 우호적이고 따뜻한 관계를 유지했다(심지어 그들의 염색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출소 후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 그는 이전 활동을 재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작가 브래드 루이스(Brad Lewis)에 따르면 그는 신문 발행인이 되어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 1950년대 말에는 마이크 월러스(Mike Wallace)의 TV 인터뷰에도 출연했다. 작가 리처드 램파스크(Richard Lamparsk)에 따르면, 이후 그는 브렌트우드 지역에 적극 투자하여 꽃집, 약국, 나이트클럽, 카지노, 주유소, 양복점 등을 소유했다.
1960년대: 고된 수감 생활
1961년, 코헨은 다시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는 징역 15년이었고, 더 가혹한 시설인 앨커트라즈 연방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1963년 앨커트라즈가 폐쇄되자 애틀랜타 연방 교도소로 이감되었다. 그에게 이것은 참담한 전환점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멀어지면서 수감자들 사이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어 훨씬 취약한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사건을 겪는다. 한 동료 수감자가 이유 없이 감방에서 그의 머리를 납관으로 강타한 것이다. TV를 시청하다가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에 그는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며칠 후 깨어났지만,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과 기억력 문제를 안고 죽을 때까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1972년에야 출소했다.
1970년대: 석방과 죽음
자유의 몸이 되어 LA로 돌아온 그는 배우 에디 윌리엄스(Edy Williams)와 가까워졌다. 코헨은 마릴린 먼로를 포함해 헐리우드의 거의 모든 사람과 인연이 있었다. 그는 리처드 닉슨과도 가까웠으며, 절친인 설교자 빌리 그레이엄과 함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부흥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오른 것은 오랜 친구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 패트리샤 허스트 납치 사건 때였다. 허스트는 손녀 구출을 위해 그의 개입을 요청했지만, 코헨은 납치범들을 알지 못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코헨은 1976년 위궤양이 위 종양으로 악화되어 잠자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의 힐사이드 메모리얼 파크 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중문화 속 미키 코헨
미키 코헨의 캐릭터는 수많은 영화, TV 영화, 드라마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8: 월터 그라우먼의 '선셋 스트립의 셰이크다운'(TV) – 해리스 라스커웨이
1991: 배리 레빈슨의 '벅시' – 하비 카이텔
1993: '폴른 엔젤스'(TV 시리즈) 시즌 1 에피소드 6 – 제임스 우즈
1997: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 – 폴 길포일
1998: 롭 코언의 '더 랫 팩(The Rat Pack)' – 앨런 울프
2011: 록스타 게임스·팀 본디의 비디오 게임 'LA Noire' – 패트릭 피슬러
2012: 루벤 플레셔의 '갱스터 스쿼드' – 숀 펜
2013: 프랭크 다라본트의 '몹 시티' – 제러미 루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