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파리 클리송-수비즈 저택(Hôtel de Clisson-Soubise), 미래의 프랑스 역사 박물관

파리 클리송-수비즈 저택(Hôtel de Clisson-Soubise), 미래의 프랑스 역사 박물관파리 마레 지구(Le Marais)에 우아하게 자리한 이 장엄한 건물은 최근 여러 매체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처음에는 클리송(Clisson) 저택으로 시작해 기즈(Guise) 저택을 거쳐 수비즈(Soubise) 저택이 된 이곳은 현재 국립문서보관소(Archives nationales) 본부로 사용되고 있으며, 조만간 프랑스 역사 박물관의 품으로 들어설 예정입니다. 역사 그 자체를 간직한 저택으로서, 이보다 어울리는 귀환이 있을까요?

중세 저택에서...

프랑스 대원수 뒤 게클랭(Du Guesclin)의 후계자였던 올리비에 드 클리송(Olivier de Clisson)은 1371년부터 필리프 오귀스트(Philippe Auguste) 성벽 바깥쪽, 당시 '르 탕플(Le Temple)'로 불리던 지역, 즉 오늘날의 마레 지구에 개인 저택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두 개의 감시탑과 뤼 데 자르시브(rue des Archives)에 위치한 요새화된 입구뿐입니다.

이 저택은 1420년부터 1435년까지 잉글랜드 섭정 베드포드 공작(Duke of Bedford)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알브레(Albret) 가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1553년에는 기즈 공작 프랑수아 드 로렌(François de Lorraine)과 그의 아내, 루이 12세의 손녀이자 앙 드 에스트(Anne d'Este)가 이곳을 구입했습니다. 당시의 유산으로는 예배당과 옛 경비실만 남아 있는데, 앙리 3세 사망 전 왕위 계승 분쟁 당시 가톨릭파인 리그(Ligue) 세력이 바로 이 경비실에 모였다고 전해집니다. 어쩌면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의 결정과, 앙리 3세가 파리를 떠나야 했던 1588년 '잠근 날(Journée des Barricades)'의 배후도 이곳이었을지 모릅니다.

파리 클리송-수비즈 저택(Hôtel de Clisson-Soubise), 미래의 프랑스 역사 박물관마리 드 기즈(Marie de Guise)는 이 저택을 상속받아 극작가 코르네유(Corneille)와 작곡가 샤르팡티에(Charpentier) 등 당대 명사들을 초대했습니다. 자녀 없이 1688년 세상을 떠난 그녀의 뒤를 이어 콩데 공비(Princess of Condé)와 하노버 공작부인(Duchess of Hanover)이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1700년에는 수비즈 공 프랑수아 드 로앙(François de Rohan)과 그의 아내 안 드 로앙샤보(Anne de Rohan-Chabot)가 저택을 구입하고 대대적인 개조에 착수했습니다. 광대한 안뜰을 향한 반월형 배치와 주랑 현관이 더해졌고, 입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뤼 데 프랑 부르주아(rue des Francs Bourgeois)로 옮겨지면서 정원으로 연결된 방대한 건축군이 완성되었습니다.

저택의 실내 장식은 로코코 양식의 정석으로 꼽히며,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카를 반 루(Carle Van Loo), 샤를 나투아르(Charles Natoire), 장 레스투(Jean Restout) 등 당대 최고의 조각가와 화가들의 손길로 완성되었습니다. 실내는 일련의 침실과 응접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유명한 타원형 살롱이 단연 눈길을 끕니다. 라퐁텐(La Fontaine)의 시에 따라 프시케(Psyche)의 이야기를 묘사한 여덟 개의 코너 패널이 살롱의 평면 구조를 강조하고, 벽판장과 거울, 정원을 내다보는 아치형 창문이 만들어내는 우아한 운율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문 위 장식물들은 신화적·목가적인 장면으로 꾸며져 로코코풍 금박 프레임으로 화려하게 마무리되어 있습니다.

...미래의 프랑스 역사 박물관으로

이 저택은 이후 프랑수아 드 로앙의 아들이자 스트라스부르 후교(Prince-Bishop)인 로앙 추기경(Cardinal de Rohan)에게 넘어갔습니다. 18세기 동안 로앙 가문의 추기경 넷이 이곳에 거주했는데, 마지막 인물은 프랑스 혁명 직전 왕비의 목걸이 사건(Affaire du Collier de la Reine)에 연루된 인물이었습니다.

1808년 국가가 이 건물을 매입한 뒤, 나폴레옹 1세는 수비즈 저택을 제국 문서 보관소에, 로앙 저택(Hôtel de Rohan)은 국립 인쇄국(Imprimerie Nationale)에 배정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1867년 수비즈 저택에 프랑스 역사 박물관을 설립했고, 1927년에는 국립문서보관소로 지정되었습니다.

오늘날 수비즈 저택은 박물관으로서 프랑스 역사의 핵심 문서들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한편, 콘서트와 강연회 등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앙 저택은 주요 역사 전시회를 개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조만간 미래의 프랑스 역사 박물관, 이른바 '프랑스 역사의 집(Maison de l'Histoire de France)'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본부로 거듭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