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둘리의 귀부인: 5세기 부르군트 여성의 놀라운 인공 두개골 변형

설탕 과자처럼 위로 길게 늘어난 두개골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하고, 심지어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까지 한다. 스위스 레만호(제네바호) 북쪽 기슭의 보주(Vaud) 주 둘리(Dully) 마을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된 이 부르군트 여성의 두개골에는 의도적인 변형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비주얼 포렌식(Visual Forensic) 연구소의 필립 프로에슈(Philippe Froesch)가 3D 모델링으로 재구성한 그녀의 얼굴은, 당시 인공 두개골 변형을 겪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프로에슈는 앞서 앙리 4세와 로베스피에르의 얼굴을 복원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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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둘리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이 40대의 젊은 부르군트 여성은 현재 스위스 시옹(Sion)의 발레 역사 박물관에서 열리는 '알프스와 쥐라 사이의 초기 중세, 350년~1000년' 특별전의 핵심 볼거리다. 이 전시는 2020년 1월 5일까지 진행되며, 이후 2020년 2월부터 6월까지 로잔의 주립 고고학·역사 박물관으로 옮겨져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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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 사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과도기

"이 전시의 목표는 고대 말기와 중세 초 사이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과도기에 대해, 인공적으로 두개골이 변형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외모를 지녔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라고 스위스 선제고고학 기업 아르케오둠(Archéodunum) 소속 고고학자 루시 슈타이너(Lucie Steiner)는 설명했다. 그녀는 "레만호 지역에서만 20세기 동안 발굴된 유사 사례가 약 30건에 달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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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군트족의 정착과 로마 동맹

443년 호수 지역에 도착한 부르군트족은 현지 주민들과 빠르게 융합되었다. 사파우디아(Sapaudia, 훗날 사부아Savoie 지역명의 어원)에 정착한 이들은 로마 장군 아에티우스(Aetius, 395~454)가 이끄는 로마군의 동맹으로 편입되어 로마 세계의 변경 방어를 담당했다. 로마가 402년 라인 강 국경에서 군대를 철수하면서 크게 약해진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슈타이너는 "이는 알레만니(Alamanni)가 론(Rhône) 계곡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로마의 방책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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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기준이었던 긴 이마

부르군트족 사이에서 미적 기준에 따라 행해진 대표적 문화 관습이 바로 의도적인 두개골 변형이었다. 제네바 대학교 선사고고학·인류학 연구소의 인류학자 제네비에브 페레아르 로프레노(Geneviève Perreard-Lopreno)는 "영아의 머리가 아직 무르고 성장하는 동안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붕대 또는 구속 도구로 머리를 조임으로써 이러한 변형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남녀 모두에게 높게 솟은 이마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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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습은 부르군트족이 갈로로마인(Gallo-Romains) 사이에 동화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이들만의 고유한 풍습은 아니었다. 대이동 시기에 부르군트족과 뒤섞여 살았던 유라시아 계통 민족인 알란족(Alains)과 사르마트족(Sarmates) 사이에서도 같은 관습이 관찰되며, 스위스 각지의 고고학 유적은 물론 북갈리아의 오버네(Obernai, 프랑스 바랭Bas-Rhin 주), 게르마니아, 동유럽 등지의 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확인된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보편적 문화 관습

두개골 변형에 대한 기록은 이미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작가들의 저술에 등장한다. 그들은 흑해 연안에 사는 민족들을 묘사하며 이러한 신체 변형에 대해 언급했다. 놀랍게도 이 관습은 근대 유럽에서도 이어졌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에서는 영아의 머리에 작은 모자를 씌우고 생후 3개월경에 벗기는 방식으로 두개골을 변형시켰는데, 이른바 '툴루즈 변형(déformation toulousaine)'이라 불렸다. 이름과 달리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나타났다. 1871년경 해부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폴 브로카(Paul Broca, 1824~1880)는 남서부, 푸아투(Poitou), 노르망디 등에 분포한 100건이 넘는 사례를 연구했으며, 결국 주(州) 단위의 명령으로 이 관습은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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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멕시코 타바스코 주 타코탈파의 푸일 동굴 깊은 곳에서 발견된 마야의 변형 두개골은 이 관습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남미 안데스 지역에서도 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이 잉카(Incas)에 대해 기술하며 이러한 변형의 다양한 형태를 언급했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그보다 앞선 파라카스(Paracas, 기원전 800년~기원후 200년), 나스카(Nazcas, 200~600년), 티와나쿠(Tiwanaku, 5~11세기) 주민들 역시 같은 변형을 행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중앙아메리카와 오늘날의 멕시코에서는 '옥수수 송이' 모양의 두개골이 마야(Mayas) 엘리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던 미의 기준 중 하나였다.

다른 대륙에서도 이러한 관습의 흔적이 보고된다.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콩고민주공화국의 망베투Mangbetus족), 그리고 고대 이집트 아마르나 시대(기원전 14세기)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된다. 심지어 네안데르탈인조차 이러한 방식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