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브르타뉴: 돌에 새겨진 15세기 노래가 부활하다

프랑스 렌(Rennes)의 자코뱅 수도원(Jacobins)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셰일 판에 새겨진 15세기 선율이 고고학자와 음악가들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습니다. 소프라노 도미니크 폰텐(Dominique Fontaine)이 그 과정을 설명합니다.

브르타뉴: 돌에 새겨진 15세기 노래가 부활하다

렌 자코뱅 수도원 발굴 조사에서 발견된 15세기 악보가 새겨진 규암판.

폭 20cm 남짓한 작은 중세 '판석'은 렌 자코뱅 수도원 토층 발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소속으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끈 고고학자 가탱 르 클루아레크(Gaëtan Le Cloirec)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발굴 장소는 15세기에 지어진 대회당 부지였습니다. 비슷한 판석은 이미 여러 번 발견했었죠. 어떤 것에는 제비뽑기 놀이 그림이, 또 다른 것에는 배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판석은 특별했습니다. 낙서를 자세히 살펴보던 중 이 석판에 무려 악보가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기도는 목소리로 전해졌다"

마름모꼴 음표 네 줄로 이루어진 이 악보를 통해 15세기 성가가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의 5선 보표와 달리 당시에는 4줄 보표에 기록되었던 것이죠. 해독을 맡은 사람은 렌의 고대 종교음악 앙상블 '아드 리브(Ad Lib)' 소속 소프라노 도미니크 폰텐입니다. 그녀는 고대 종교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몇 안 되는 시편창자(성가대 지휘자에 해당하는 역할) 중 한 사람입니다. 폰텐은 "작곡 수업의 연습곡이었을 수도 있고, 독창적인 창작곡이었을 수도 있습니다"라며 "선율이 완결된 형태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럽 종교음악에서 비교적 늦게 등장한 형식인 'A 에올리안(Aeolian)' 선법의 악보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세의 종교 성가는 주로 D, E, F, G 네 가지 선법으로 작곡되었습니다. 폰텐은 웃으며 덧붙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A 선법이 요즘 전통 켈트 음악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더 나아가 헤비 메탈에서도 널리 쓰인다는 점입니다. 당시 기보된 기악곡은 드물었습니다. 기도는 목소리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성 그레고리오(교황 그레고리오 1세) 이후로는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노래할 때 하나님께 더 잘 들린다고 믿어졌죠. 그래서 하루의 예전을 따르기 위한 '시간경(時課經)'이라는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폰텐은 이 단선율 종교 선율을 해독해 직접 노래로 옮겼습니다.

브르타뉴: 돌에 새겨진 15세기 노래가 부활하다

종이에 옮겨 적은 악보. INRAP 고고학자 프랑수아즈 라본장(Françoise Labaune-Jean)이 전사했습니다.

르 클루아레크는 "현장에 있던 서른 명쯤 되는 고고학자들에게 이 선율을 들려주었을 때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습니다. 과거가 갑자기 그 목소리를 통해 눈앞에 구현된 순간이었죠"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노래는 2017년 3월 15일, 렌 자코뱅 수도원 발굴 최종 보고서가 국가 기관에 공식 제출되는 자리에서도 공개되었습니다. 6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한 이례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로마 신전과 고대 건축물, 수천 점의 유물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또한 800기가 넘는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납관과 성유함은 물론 놀라울 정도로 온전하게 보존된 루이즈 드 캉고(Louise de Quingo, 1656년)의 유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브르타뉴 대도시의 역사 일부를 다시 쓸 만한 성과인 셈입니다… 물론 음악과 함께요!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는 브르타뉴 박물관(Musée de Bretagne)에서 두 차례의 대형 전시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음표 모양에 담긴 이야기

중세에는 뾰족하게 갈아낸 펜촉 덕분에 속기 기호처럼 보이는 음표를 적을 수 있었고, 이후 잉크로 꽉 채운 사각형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음표의 형태는 따라야 할 리듬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잉크를 아끼기 위해 음표 몸통을 채우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필사자들은 효율성을 위해 음표를 둥글게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활판 인쇄술은 마름모꼴 음표를 17세기 초까지 계속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