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킬로니드 학살 사건, 아테네를 뒤흔든 신성 모독의 얼룩

킬로니드 학살 사건, 아테네를 뒤흔든 신성 모독의 얼룩

기원전 7세기 아테네, 올림픽 우승자 킬론이 참주가 되겠다며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했다가 실패하면서 벌어진 비극. 신성한 제단 앞에서 목숨을 잃은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약 2,600년이 지난 2016년 아테네 교외에서 발굴된 80구의 유골.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정치적 살인 사건 중 하나를 조명한다.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한 킬론, 좌절된 참주의 꿈

이 사건은 기원전 632년에 일어났다. 메가라의 참주 테아게네스의 사위였던 킬론(Cylon)은 올림피아 경기에서 우승한 공로로 명망 높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이 모험은 헤로도토스(V, 71)와 투키디데스(I, 126, 8~11)의 기록에 전해진다. 메가라인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킬론은 부하들과 함께 아크로폴리스 꼭대기를 장악하고 참주 정치를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의 저항은 대단히 완강했다. 도리아 혈통의 이웃 민족이 그 신성한 장소에 발을 들이는 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물도 식량도 없이는 포위를 견딜 수 없게 되자, 킬론은 형제와 함께 도주했다. 남겨진 습격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린 끝에 언덕 위 제단 앞에 간원자처럼 몸을 숨겼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거짓 약속으로 그들에게 그 자리를 떠나게 만든 뒤 처형해 버렸고, 이로써 신성 구역의 불가침 원칙을 스스로 짓밟았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이 신성 모독 행위의 책임자는 알크메온 가문 출신의 아르콘(집정관) 메가클레스였으며, 그의 가문은 이후 줄곧 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솔론 전, XI, 2).

솔론의 재판과 에피메니데스의 정화 의식

신들에 대한 막대한 모욕을 되갚아야 한다고 여긴 아테네인들은 솔론의 설득에 따라 책임자들을 300명의 판사 앞에 세워 재판에 회부했다. 킬로니드(킬론의 추종자들) 살해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아티카에서 추방되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자들은 무덤에서 파내어 지역 경계 밖에 내버려졌다.

그러나 그 얼룩은 너무나 깊었다. 결국 델포이의 피티아(여사제)의 요청에 따라 도시 전체를 정화하는 집단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를 위해 불린 이가 크레타의 현자 에피메니데스다. 그는 그리스 세계에서 관찰되는 일종의 샤머니즘적 체험과 통하는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노현자는 제46회 올림피아드에 아테네에 도착해 도시를 정화했다. 검은 양과 흰 양을 이끌고 아레스의 언덕, 아레오파고스에 이른 그는 양들이 마음껏 풀을 뜯게 한 뒤, 쉬고 있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잡아 해당하는 신에게 바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I, 110).

2,600년 만에 드러난 킬로니드의 유골

2016년 4월, 그리스 문화부는 세상을 놀라게 한 고고학적 발견을 발표했다. 아테네 남쪽 팔레론 만, 옛 항구 인근에 스타브로스 니아르코스 재단 문화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던 부지에서 시행된 긴급 발굴 조사에서 스텔라 크리술라키가 이끄는 팀이 80구의 해골을 발견한 것이다. 유골은 서로 뒤엉켜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입을 벌린 채 비명을 지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 손은 머리 위에서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유골의 주인들은 체격이 건장한 남성들이었고, 치아 상태는 매우 양호했으며 골절 흔적은 없었다. 한 사람의 어깨에는 화살촉이 박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발이 묶인 채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은 이를 생포되었음을 시사하는 정황으로 해석했다. 지표에서 2.5미터 깊이에서 확인된 이 대량 매장지에서는 오이노코에(그리스식 주전자) 두 점도 출토되어, 매장 시기는 대략 기원전 650년에서 625년 사이로 추정되었다. 연구진은 이 유골이 다름 아닌 킬로니드들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테네가 2,600년 가까이 뒤집어쓴 신성 모독의 얼룩이, 마침내 땅속에서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