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로는 때로 군사적 이동 경로보다 앞서 등장했고, 때로는 뒤처졌으며, 때로는 서로 겹치면서 역사를 형성해 왔습니다. 문제는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항상 명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생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특정 유물이 발견되면 아마추어와 전문가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알라(Alla)'라는 이름이 새겨진 반지가 발견된 바이킹 무덤에서 이런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북유럽 민족이 펼친 상업 활동의 놀랍도록 넓은 범위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와 지중해 사이의 경제적 연결은 중세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 보후슬란(Bohuslän) 지역의 최근 발견이 이를 입증합니다. 동위원소 분석으로 산지가 확인된, 키프로스 섬 출신 구리로 만든 도구입니다. 이 유물의 연대는 약 3,6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두 지역 간 상업 교류의 가장 오래된 알려진 사례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구리는 주석과 합금하여 청동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금속 중 하나입니다.

지중해의 주요 구리 생산 중심지는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이베리아 반도, 그리고 키프로스였습니다. 특히 키프로스는 고품질 금속을 자랑했으며, 이를 녹여 일종의 주괴 형태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른바 '황소가죽(oxhide)'이라 불린 주괴는 다루기 쉽도록 네 모서리에 돌기가 달린 판형으로, 늘어난 소 가죽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각 주괴의 무게는 약 37킬로그램에 달했으며, 대부분 그리스와 터키 전역에서, 종종 난파선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지중해 구리 무역이 기원전 1550년경 시작된 것으로 추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의 이번 발견은 연대기를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려 바꿀 수도 있습니다. 예테보리 대학교의 요한 링(Johan Ling) 박사가 이끄는 팀은 약 70개의 도끼와 단검 조각을 조사했습니다. 링 박사는 지중해 구리가 한꺼번에 북유럽으로 수출된 것이 아니라, 보후슬란이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서해안 마을에 닿는 특정 무역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지불 통화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물교환이 당시의 거래 방식이었다고 가정할 때, 북유럽인들은 이 주괴와 교환하여 어떤 제품을 제공했을까요? 쉬운 답은 없어 보입니다.
링 박사는 가능성 있는 후보로 호박(amber)을 꼽습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알려지고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재료로,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이 레반트의 다른 상품 대금을 지불하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세부 사항 하나: 보후슬란에는 역시 청동기 시대에 속하는 암각화가 여러 점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는 특징적인 황소가죽 주괴를 실은 상선을 묘사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