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리스(monolith)는 하나의 커다란 돌덩이로 이루어진 거대 석재를 뜻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울루루(에어즈 록)나 스페인의 페뇨 데 이파크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경우도 있고, 특정 목적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각된 사례도 있습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선사시대의 선돌(立石)입니다.
이렇게 인공으로 만들어진 모놀리스는 용도와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목적의 부활절섬 모아이상, 장식용 이집트 오벨리스크, 건축 구조물인 이탈리아 라벤나 테오도릭 영묘의 돔, 역사 기록물인 트라야누스 원주, 그리고 아직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은 코스타리카의 석구(石球)까지 그 스펙트럼은 매우 넓습니다.
모놀리스의 크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레바논입니다. 고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거대한 석재 중 하나가 이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비로운 이름 '임산부의 돌'로 불리는 이 거석은 바알베크(Baalbek) 채석장에서 나왔습니다.
베이루트에서 약 86km 떨어진 바알베크는 페니키아 시대에 신 바알에게 바쳐진 성소가 세워졌던 가나안 계열 도시였습니다('바알베크'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 이후 그리스 지배기를 거치며 도시 이름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즉 '태양의 도시'로 바뀌었는데, 이는 헬레니즘 시대에 바알 신이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러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곳에 유피테르 헬리오폴리타누스(Jupiter Heliopolitanus) 신전을 세웠습니다. 이미 그리스식 개축을 거치며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된 이 신전의 안뜰은 길이 88m, 폭 48m에 달하며, 각각 무게 약 750톤에 이르는 거대한 석재 3개가 사용되었습니다. 더 큰 석재를 추가하려던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채석장에 버려진 채 방치되었습니다.

버려진 이 석재는 본래 안뜰을 둘러싼 삼석탑(trilithon, 두 개의 수직 기둥 위에 하나의 수평 상인방을 얹은 구조)을 연장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돌은 채석장 내에서도 원래 자리가 아닌 곳으로 옮겨져 있는데, 신전에서 불과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짧은 거리임에도 기묘하게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에서 그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1996년 오스트리아 린츠 대학교 연구팀은 프랑스 고고학자 장피에르 아당(Jean-Pierre Adam)의 기존 추정치를 재검증했고, 그 결과 이 석재는 길이 21.5m, 폭 4.8m, 한 변 4.2m의 정사각형 단면에 무게는 900~1,100톤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모놀리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그 이름입니다. 아랍어로는 하자르 엘 쿠블레(Hadjar el-Qoublé), 즉 '남쪽의 돌'이라 불리지만, 전통적으로는 '임산부의 돌'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오랜 전승답게 몇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첫 번째는 이 돌의 표면을 만지면 다산(多産)을 얻을 수 있다는 현지 믿음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는 신비로운 임산부가 아이의 양육비를 조건으로 이 돌을 옮기겠다고 제안했다는 전설입니다. 세 번째는 셈족 신화에 등장하는 정령 진(djinn)이 이 거석을 옮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임산부의 돌'만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90년에는 규모는 더 작지만 더 무거운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거석(19.5 × 4.4 × 4.5m, 약 1,242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독일 고고학연구소가 세 번째 거석을 발굴했습니다. 길이는 19.6m로 앞선 것들보다 약간 짧지만, 폭이 6m, 단면이 5.5m로 확장되어 무게는 약 1,650톤에 이릅니다. 이는 인류가 조각한 것으로 알려진 석재 중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규모는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운반 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크기였기에 결국 버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균열이 생겨 포기된 룩소르의 유명한 미완성 오벨리스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례입니다.

바알베크 유적은 지금도 발굴과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