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박람회장 공사 중 우연히 드러난 페니키아 묘지
1887년, 스페인 카디스에서 국제 해양 박람회가 개최되기 위해 카디스 시내의 '푼타 데 라 바카(Punta de la Vaca)' 일대가 정비되었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지하 약 5미터 깊이에 페니키아·포에니 양식의 무덤들이 늘어선 네크로폴리스(고대 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부장품 상당수는 작업 인부들에 의해 빼돌려져 개인 수집가들에게 팔려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잊히지 않을 보물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바로 암반 속에 안치된 채, 다듬은 석재로 덮고 점토로 메운 무덤에서 발견된 남성 의인형 대리석 석관이다.
그리스 미술의 정수를 담은 남성 석관
이 석관은 관 몸체와 뚜껑,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백색 대리석 제품으로, 뚜껑 위에는 반듯이 누운 남성상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식 머리 장식을 하고 있으며, 곱슬이며 좌우 대칭을 이루는 수염, 가슴 위에 포개 놓인 왼팔, 오른손에 든 것으로 보이는 심장 모양의 물건이 특징적이다.
오른팔에는 원래 채색된 월계화 화관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맨발은 받침대 위에 얹혀 있는데, 엄지발가락이 다른 발가락과 크게 벌어져 있어 샌들을 신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눈은 뜨고 있으며, 몸에는 몸에 감기는 듯한 민소매 로브를 걸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석관이 기원전 450~401년경, 발견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돈(Sidon) 또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그리스화가 깊이 진행된 그리스계 혹은 페니키아계 예술가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본다.

한편 이 네크로폴리스 전체는 1947년 8월 18일, 도시 여러 동네를 덮친 육군 탄약고 폭발 사고로 파괴되었다. 다행히 석관은 무사했고, 네크로폴리스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카디스 고고학 박물관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카디스의 숙녀'를 평생 찾아 헤맨 고고학자
1904년경, 고고학자 펠라요 킨테로 아타우리(Pelayo Quintero Atauri)가 카디스에 부임했다. 1867년 우클레스(Uclés, 쿠엥카 주)에서 태어난 그는 켈트·로마 유적 세고브리가(Segóbriga) 발굴을 지휘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카디스에서는 미술공예학교 도화 교사, 도 단위 발굴 책임자, 현립 미술관 관장, 기념물 위원회 위원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동시에 그는 포에니·로마 시대 네크로폴리스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 보석·골호·앰포라(양수 항아리)·향 분·등잔 등 방대한 유물을 회수했고, 이들은 지금 카디스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킨테로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페니키아 석관이었다.
1887년에 남성 석관이 이미 발견된 이상, 언젠가 여성 석관도 반드시 나올 것이라 확신한 그는 1939년 도시를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찾아다녔다. 당시 언론에는 그의 발굴 소식이 수없이 실렸고, 밤에는 원하는 '카디스의 숙녀(Lady of Cádiz)'의 꿈을 꿀 정도로 집착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지 않았다. 펠라요 킨테로는 1946년 10월 27일, 테투안(Tetuán)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 같은 반전, 그의 집터에서 나온 여성 석관
그리고 1980년 9월 26일, 마치 프랭크 캐프라 영화 한 장면 같은 극적인 우연이 연출된다. 카디스 루이스 데 알다(Ruiz de Alda) 거리에서 새 건물 기초 공사를 위해 땅을 파던 중, 기원전 470년경으로 추정되는 페니키아 여성 석관이 발견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원래 서 있던 건물이 다름 아닌 고고학자 펠라요 킨테로 본인의 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카디스 출신 작가 펠리페 베니테스 레예스(Felipe Benítez Reyes)는 2007년 발표한 소설 『신기루의 시장(Market of Mirages)』에서 이 놀라운 우연을 소재로 삼았다.
물론 좋은 이야기에는 음모와 가설이 따르기 마련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듯이, 이 일에 너무 많은 우연을 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킨테로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든 석관을 자기 정원에 숨겨두었다는 주장부터, 1939년 이전에 이미 석관의 내용물과 부장품을 언급한 그의 문서를 봤다는 사람들까지 있다. 하지만 말로만 존재할 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카디스의 숙녀와 그 안에 든 부장품
'카디스의 숙녀' 역시 남성 석관과 마찬가지로 뚜껑과 관 몸체로 이루어진 대리석 석관으로, 이번에는 여성상이 새겨져 있다. 발견 당시에는 아직 채색 안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른손은 앞으로 뻗어 있고, 왼손에는 뚜껑이 달린 향유 병(알라바스트론)을 들고 있다.
관 안에서는 청동 속눈썹 두 쌍, 우라에우스(앙상한 코브라 형태로 표현된 여신 와제트) 모양 펜던트 부적 다섯 개, 스카라베(풍뎅이 형태의 부적) 한 개, 청동 못 네 개로 이루어진 부장품이 나왔다.
오늘날 카디스 박물관에서 나란히 전시된 두 석관은 스페인 땅에 남은 페니키아 문명의 존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한편 펠라요 킨테로는 2011년부터 고향 우클레스의 그의 이름을 딴 광장에 흉상으로 기려지고 있으며, 카디스 언론은 그를 '결코 감사받지 못한 사람(the man they never thanked)'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