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인들은 정말로 대리석 블록을 운반하고 있었을까요? 고대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실제로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울창한 숲속의 네메시스 성역
실제로 고대 라무누스(Rhamnous) 유적에서 마라톤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여신 네메시스(Nemesis)의 성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이곳에는 응보의 정의·단결·복수·균형을 관장하는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최초의 신전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약 50년 뒤 한층 큰 규모로 재건됩니다. 페르시아인들이 이곳을 유린하며 신전을 허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10년 전인 기원전 490년, 아테네와 그 동맹군이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페르시아군이 개선비를 세우려고 운반해 오던 바로 그 대리석 블록을 빼앗았고, 아테네인들은 그것으로 네메시스 여신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파우사니아스가 언급한 그 상이 바로 신전 안에 모셔져 있던 것입니다.

페이디아스의 손끝에서 태어난 여신
전설에 따르면 이 대리석 블록은 전투 후 페르시아군에게서 거두어진 것으로, 대조각가 페이디아스(Phidias) 혹은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아고라크리토스(Agoracritus)가 이를 깎아 여신상을 완성했다고 전합니다. 상은 제단 앞, 정교한 부조로 장식된 받침대 위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지리학자 스트라본(Strabo) 역시 이 여신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상의 높이는 무려 4미터에 달했으며, 로마의 학자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는 이 작품을 “그리스 조각의 최고 걸작”이라 극찬했습니다.
발굴과 복원의 긴 여정
1820년, 영국 건축가 존 간디(John Gandy)는 성역 유적에서 실물 크기의 네메시스상 대리석 머리를 발견했습니다. 머리에는 금관을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이 유물은 이후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원본상의 수많은 조각들이 잇달아 발견되었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수백 개의 파편을 모아 1972년 마침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높이 약 90센티미터, 폭 240센티미터에 달하는 받침대도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받침대의 세 면에는 거의 원형을 이루며 이어지는 부조 장면이 새겨져 있는데, 레다(Leda)가 딸 헬레나(Helena)를 그녀의 어머니인 네메시스에게 보여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40개의 파편을 수집하고 이를 하나로 조립한 주역은 테살로니키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 게오르기오스 데스피니스(George Despinis)였습니다. 그런데 연대 측정 결과, 이 상은 기원전 430년경, 즉 마라톤 전투로부터 약 60년 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회수된 잘게 부서진 파편의 수와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이 상은 서기 4세기에 ‘체계적이고 강렬하게 파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 신전과 조각상의 훼손을 방임하면서, 기독교 광신도들의 손에 멸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복원 작업 덕분에 이 상을 모방한 축소판 로마 복제품 11점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Nemesis (Penn Museum) / British Museum / Miles, M. (1989). A Reconstruction of the Temple of Nemesis at Rhamnous. Hesperia: The Journal of the American School of Classical Studies at Athens, 58(2), 133–249 / Odysseus (그리스 문화부)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