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두건을 쓴 정령 '제니 쿠쿨라티', 유럽 도깨비 설화의 고대 로마 기원

유럽 전역의 도깨비 같은 존재들

고블린, 놈, 드워프… 이런 작은 정령들은 스페인 아스투리아스의 트라스구(trasgu), 칸타브리아의 트라스톨리요(trastolillo), 바스크의 이라초(iratxo), 카탈루냐의 포예(follet)에서부터 프랑스의 뤼탱(lutin), 아일랜드의 렙러콘(leprechaun), 슬라브의 도모보이(domovoi), 이탈리아의 마차풀(mazapgul)에 이르기까지 유럽 곳곳의 민담에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키, 장난기 어리거나 조롱하는 성격, 머리를 덮는 두건이 공통된 특징이죠. 이 때문에 학자들은 이 존재들이 공통된 기원을 가졌거나 문화적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왔습니다. 실제로 그 흔적은 적어도 고대 로마, 그중에서도 '제니 쿠쿨라티(genii cucullati)'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듯합니다.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유사한 정령들

사실 이와 유사한 존재들은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합니다. 마야의 알룩스(alux), 중앙아메리카의 시피티오(cipitio), 베네수엘라의 모모이(momoy), 일본의 아부라스마시(abura-sumashi), 중국의 머과이(mogwai)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이들의 외형은 훨씬 다양해서, 켈트 민속에서 유래해 로마로 전해진 오래된 원형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로마인들이 외래 숭배와 신들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건'을 뜻하는 쿠쿨루스와 바르도쿠쿨루스

게누스 쿠쿨라투스(genus cucullatus)는 '두건을 쓴 천령 또는 정령'을 의미하며, 두건(cucullus)으로 머리를 덮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정확히는 단순한 두건이 아니라 바르도쿠쿨루스(bardocucullus), 즉 갈리아인들이 입고 로마 군단병들이 채택한 짧은 후드 망토였습니다. 이후에는 민간인들 사이로도 확산되었습니다.

두건을 쓴 정령  제니 쿠쿨라티 , 유럽 도깨비 설화의 고대 로마 기원

이 의복은 1~2세기 무렵, 야만족과 로마인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꺼운 양모나 가죽으로 만들어졌으며 소매가 없거나 팔꿈치까지만 있었고, 몸을 꼭 감싸며 보통 허리까지 내려왔습니다. 더 긴 형태인 콜로비움(collobium) 또는 코굴라(cogulla)는 훗날 수도원의 수도복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좀 더 가볍고 느슨하지만 역시 후드가 달린 폰초형 외투인 파에눌라(paénula)가 있었습니다.

이런 옷들은 처음에는 노예, 농민, 병사 같은 사회 하층민이 악천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선택지였습니다. 그러나 3세기부터는 부유층도 겨울철이나 여행 시 토가보다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착용하게 됩니다.

켈트 문화권의 공통 의복

로마가 갈리아인들의 바르도쿠쿨루스를 받아들였다면(어떤 학자들은 로마 고유의 창작물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켈트 문화권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입던 의복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켈트 문화권에는 수많은 공통 요소가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쿠쿨리(cuculli) 관련 유물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독일(라인란트), 오스트리아(케른텐), 스위스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두건을 쓴 정령  제니 쿠쿨라티 , 유럽 도깨비 설화의 고대 로마 기원

더 구체적으로는, 센 강과 마른 강 상류에서 출발해 알프스를 넘어 기원전 400년경 포 계곡에 정착한 뒤 로마화되어 브리튼 원정군에 배속된 부족인 릉고네스(Lingones)를 기원으로 지목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두건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쿠쿨루스와 제니 쿠쿨라티의 연관성이 하나의 독특한 도상학(iconography)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조각상, 부조, 비석, 등롱, 펜던트 등에 새겨진 인물들이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종교적 의미로 해석됩니다.

모든 유물이 동일한 존재를 나타내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오스트리아 케른텐주의 바벨스도르프(Wabelsdorf) 신전에서 '게누스 쿠쿨라투스'라는 명문이 새겨진 제단 두 개가 발견되면서 이 해석이 다른 유물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브리튼의 삼위일체와 텔레스포로스

영국에서는 이들이 세 명 한 조의 삼위일체 형태로 등장하는 반면, 로마에서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아들이자 병에서 회복한 이들을 상징하는 텔레스포로스(Telesphorus)와 동일시되었습니다. 텔레스포로스 숭배는 아마 1세기 말 페르가몬(아버지에 대한 신앙이 깊던 곳)에서 시작되어 다뉴브 강 유역으로 퍼졌으며, 두건 또는 때로는 프리기아 모자(pilleus)를 쓴 난쟁이 형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텔레스포로스는 원래 기원전 3세기 갈라티아인들이 아나톨리아로 가져온 켈트 신으로 추정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와 결합했고,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로마 제국으로 전해졌습니다.

다양한 해석: 다산과 치유의 상징

게누스 쿠쿨라툼이 종교적 존재라는 것과 그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를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비문이나 문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상학적 요소에 근거한 여러 해석이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는 두건과 로마 미술에 풍부한 남근상, 즉 액막이 부적 파스키눔(fascinum) 사이의 유사성입니다. 실제로 두건을 벗길 수 있는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거대한 파수스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경우 제니 쿠쿨라티가 아니라 다산의 신 프로이아포스(Priapus)의 형상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로이아포스는 (하급 신이지만) 다산의 신이었고, 이것이 이 조각상들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종종 남근을 지니거나 손에 알(생명과 재생의 상징) 또는 양피지 두루마리(수명의 은유)를 들고 있으며, 단검을 든 경우도 있습니다.

두건을 쓴 정령  제니 쿠쿨라티 , 유럽 도깨비 설화의 고대 로마 기원

이 모든 요소와 건강, 즉 텔레스포로스의 관련성은 많은 제니 쿠쿨라티가 우물과 샘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로 더욱 뒷받침됩니다. 이 물들은 치유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고대뿐 아니라 중세에도). 따라서 질병과 죽음을 물리치고 신생아를 보호하는 것이 이들의 명백한 역할이었을 것입니다.

마트로나이와 삼위일체의 수수께끼

이러한 재생 능력은 때때로 이들을 수반하거나 보완하는 다른 존재들, 즉 북유럽 기원의 여신들인 마트로나이(matronae)와도 연결됩니다. 마트로나이는 갈리아, 브리튼, 게르마니아, 북부 이탈리아, 히스파니아 일부의 켈트족들에게 깊이 숭배받았습니다. 홀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니들과 함께 나타나는데(흔히 한 여성이 두세 명의 남성과 동반), 다시금 로마에 이들을 소개한 것은 군단병들이었습니다.

숫자 3은 다시금 열쇠입니다. 많은 제니 쿠쿨라티가 마트로나와 함께든 없든 삼위일체로 묶여 나타나며, 일부 학자들은 각 형상이 크기와 외형의 차이로 구별되는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했다고 봅니다.

인구어족 삼기능 가설과의 연결

이와 관련해 철학자 고비노 백작과 언어학자 조르주 뒤메질이 제시한 원시 인구어족 삼기능(trifunctionality) 이론을 검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흑해 북동부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동석기~청동기 초기 민족들은 심리, 이데올로기, 사회,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삼분법적 사고 체계를 지녔습니다.

여기서 사회의 세 계급 분화, 종교의 세 기능(마법-정의 / 힘-승리-지혜 / 평화-미-번영-사랑), 사회 생활의 권위-전쟁-생산성 구분 등이 파생됩니다. 물론 삼위일체는 고대 이집트처럼 다른 지리적·역사적 맥락에서도 나타난다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두건을 쓴 정령  제니 쿠쿨라티 , 유럽 도깨비 설화의 고대 로마 기원

가장 단순한 해석일 가능성

로마 브리튼 전문 영국 역사가 기 드 라 베두아예르(Guy de la Bédoyère)가 지적한 재미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니 쿠쿨라티의 독특한 도상학은 심오한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그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망토에 싸인 인물을 조각하는 것이 팔다리를 표현하는 것보다 쉬웠다는 단순한 현실적 이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