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스코틀랜드 탭 오노스 유리화 요새, 픽트족 최대 정착지로 밝혀져…최대 4천 명 거주 추정

스코틀랜드 애버딘셔(Aberdeenshire)의 조용한 마을 라이니(Rhynie)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우뚝 선 탭 오노스(Tap O'Noth) 유리화 요새가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가장 큰 고대 정착지 중 하나로 공식 확인되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숨겨져 있던 거대 정착지

애버딘 대학(University of Aberdeen) 고고학팀은 라이니 마을 인근 탭 오노스 정상부에서 최대 4,000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800개 이상의 오두막 흔적을 확인했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7헥타르 면적을 성벽으로 두른 이 요새는 서기 5~6세기에 건설되었으며, 정착 활동의 일부는 서기 3세기보다 이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는 해당 정착지가 픽트족(Picts)의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수백 명만이 살아가는 한적한 이 지역이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로마 시대 이후 정착지들과 견줄 만한 언덕 꼭대기 정착지였다는 사실은, 고고학계의 통념을 뒤바꾸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왕실급 위상을 짐작케 하는 계곡의 엘리트 복합단지

애버딘 대학 고고학자들은 2011년부터 이 일대에서 광범위한 현장 조사를 수행해 왔습니다. 다만 그동안 조사의 초점은 바플랫(Barflat) 농장에서 출토된 유명한 '라이니 맨(Rhynie Man)' 석상 덕분에 픽트족 유산으로 오랫동안 주목받아 온 저지대 계곡 지역이었습니다.

계곡 정착지에서는 지중해산 와인 소비, 프랑스 서부산 유리 용기 사용, 집약적인 금속 생산의 증거가 차례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해당 장소가 왕실과 연관될 만큼 높은 위상을 지닌 곳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내 경력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

반면 탭 오노스 정상을 군림하는 언덕 요새는 그동안 청동기 시대 또는 철기 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어 왔습니다. 조사를 주도한 고든 노블(Gordon Noble) 교수는 현장의 활동이 픽트 시대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이라고 밝혔습니다.

요새의 규모가 크고 케언곰(Cairngorms) 변두리 언덕에 위치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기후가 더 따뜻했던 시기, 아마도 중세 시대에 점유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초기 발굴 결과 탭 오노스 정상의 유리화 요새는 기원전 400~100년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언덕의 낮은 경사면을 감싸는 벽으로 둘러싸인 하부 요새를 조사해 왔습니다. 연대 측정 결과는 그야말로 놀라웠습니다. 이 거대한 요새는 서기 5~6세기에 건설되었으며, 바플랫 계곡의 엘리트 복합단지와 동시에 점유되었던 것입니다. 언덕 정착지의 활동은 서기 3세기까지 확장되었지만, 발굴된 두 오두막 플랫폼 모두 서기 5~6세기 단계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드론·레이저 조사로 드러난 800개의 오두막

연구팀은 이후 드론 항공 조사와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요새 내부에 수백 개(최대 800개로 추정)의 오두막 플랫폼이 존재함을 입증했고, 이를 통해 탭 오노스는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된 가장 큰 고대 정착지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건물 배치 분석 결과 도로변에 늘어서 있거나 빽빽하게 밀집된 형태가 많아, 상당수 건물이 비슷한 시기에 건축·점유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드론 조사에서는 각 건물군 안에 유독 크기가 큰 오두막이 존재하는 것도 확인되어, 요새 내부에 일종의 계층적 조직이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중세 초기 영국의 어떤 유적보다 넓은 규모

노블 교수는 "상부 요새와 하부 요새를 합친 면적은 약 16.75헥타르이며, 적어도 한 단계는 서기 5~6세기에 조성되었다"며 "이는 중세 초기 영국에서 알려진 어떤 유적보다도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중세 초기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요새는 약 12에이커 규모의 버그헤드(Burghead)이며, 영국에서는 후기 로마 유적으로 유명한 캐드버리 성(Cadbury Castle)이 7헥타르, 틴타젤(Tintagel)이 약 5헥타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탭 오노스의 발견은 이 시기 전체의 역사적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확인된 각 판자집에 4~5명이 살았다고 가정하면, 언덕에는 4,000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했던 셈입니다. 규모는 거의 도시 수준이며, 픽트족의 맥락에서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습니다. 이전까지 우리는 스코틀랜드에서 정착지가 이런 규모에 도달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2세기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 시대 말기 철기 시대에 시작되어 6세기까지 확장된 활동을 통해, 우리는 잠재적으로 거대한 지역 정착지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