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목마의 계략을 폭로하려다 거대한 뱀의 습격으로 두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은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의 비극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라오콘의 이야기는 아폴로도로스와 스미르나의 퀸투스 등 수많은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데, 특히 퀸투스는 서사시 포스트호메리카에서 트로이 함락 당시 라오콘의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유명한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 역시 헬레니즘 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오콘 신화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시기 라오콘의 처참한 최후를 조형적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대리석 조각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입니다. 현재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고대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플리니우스가 박물지에서 극찬한 조각상으로 여겨집니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이 조각군은 세 명의 재능 있는 예술가가 단일 대리석 블록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훗날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집니다.
조각품의 중심에는 인상적인 라오콘의 모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리와 팔에 두 마리의 뱀이 휘감긴 가운데, 근육질의 몸으로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애쓰는 모습입니다. 사제는 왼팔로 뱀 한 마리를 붙잡았지만 파충류를 쫓아내려는 노력은 헛수고였습니다. 뱀의 머리는 엉덩이 바로 위에 위치해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그의 오른팔은 등 뒤로 구부러져 있으며 같은 뱀의 몸통에 눌려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둘째 뱀의 똬리에 완전히 휘감긴 막내아들이 있습니다. 소년은 뱀의 머리를 몸에서 떼어내려 하지만 이미 독사에게 물린 상태였습니다. 혈관을 타고 퍼지는 독의 영향으로 소년은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왼쪽의 큰아들은 공포와 절망에 빠진 채, 둘째 뱀의 꼬리에서 자신의 발목을 빼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1506년, 티투스 욕장(Baths of Titus) 유적 아래 포도원에서 발굴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목을 받았고, 교황은 즉시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피렌체 건축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를 현장에 보내 발견물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상갈로는 이 조각상이 플리니우스가 묘사한 작품임을 곧 확인했습니다. 다만 플리니우스의 주장대로 조각의 웅장함은 사실이었지만, 조각상은 단일 대리석 덩어리로 조각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세기 동안 라오콘 군상이 플리니우스가 언급한 작품과 동일하다는 점을 의심하는 학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고고학적 발견물과 마찬가지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도 온전한 상태로 출토되지는 않았습니다. 막내아들의 왼팔, 큰아들의 오른손, 뱀의 똬리 일부 등 여러 부분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잃어버린 부분의 복원을 원했고, 바티칸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에게 이 프로젝트를 의뢰했습니다. 브라만테는 누가 가장 뛰어난 팔 복원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콘테스트를 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콘의 잃어버린 팔을 등 뒤로 구부리는 안을 제안했습니다. 마치 트로이 목마 사제가 등에서 뱀을 떼어내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브라만테의 먼 친척이기도 한 화가이자 건축가 라파엘로(Raphael)는 팔을 뻗는 안을 선호했습니다. 결국 건축가이자 조각가 야코포 산소비노(Jacopo Sansovino)가 우승자로 선정되었고, 그의 팔을 뻗은 복원안은 라파엘로가 상상한 조각상의 모습과 일치했습니다.

약 20년 뒤인 1532년,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조반니 안젤로 몬토르솔리(Giovanni Angelo Montorsoli)가 조각상을 수리하며 더 곧게 뻗은 팔을 장착했습니다. 이 복원판은 이후 오랫동안 조각품의 표준 모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다 1906년, 기묘한 운명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400년 전 조각상이 발견된 지점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로마의 한 작업장에서 고대의 구부러진 팔이 출토된 것입니다.
팔을 발견한 고고학자 루드비히 폴락(Ludwig Pollak)은 그 예술 양식이 라오콘 군상과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했고, 이것이 사라진 조각의 일부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부러진 팔을 바티칸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큐레이터들은 이 팔을 보관실에 넣어두고 곧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팔에 뚫린 구멍이 조각상의 구멍과 완벽하게 일치하면서 이 조각의 출처를 의심할 여지는 사라졌습니다. 1957년, 박물관은 몬토르솔리의 복원을 철거하고 미켈란젤로가 제안했던 대로 구부러진 팔을 장착했습니다. 위대한 이탈리아 조각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그의 안목이 옳았음이 입증된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Amusing Planet에 게재된 글로, 번역 후 허가를 받아 재출판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