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식민 지배기였던 19세기에 프랑스 원정군에게 살해된 알제리 저항운동가들의 두개골 총 36개를 파리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 소장품에서 알제리 측에 반환하기로 하고, 현재까지 그중 24개를 인도했습니다.
파리 인간박물관 인류학 소장품에 보관되어 있던 선사시대 및 역사시대의 두개골 컬렉션
독립 58주년을 앞두고 이루어진 반환
2020년 7월 3일 업데이트: 프랑스는 1849년에 살해된 알제리 저항운동가들의 두개골 24개를 알제리에 공식 인도했습니다. 여기에는 셰이크 부지안(Sheikh Bouziane)의 두개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제리가 2020년 7월 5일 독립 58주년을 맞이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이번 반환은, 파리와 알제 간 관계의 화해를 모색하려는 프랑스의 의지로 널리 해석되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선언, 반환 정책의 전환점
프랑스 주요 박물관계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진 것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부르키나파소 와가두구에서의 연설과 아프리카 문화유산 반환을 임기 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이어, 2017년 12월 6일 알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임 대통령들과 차별화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알제리 공권력이 거듭 요청해 온 알제리 순국자들의 두개골 반환 요청을 수용했다"고 밝히며, "이번 반환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법률 조치를 진행할 것"이라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이는 인류학적 소장품의 '양도 불가능성'과 '소멸시효 없음'이라는 법적 원칙을 근거로 인골 반환 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해 온 프랑스 및 유럽 주요 기관들의 기존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해 주는 사건입니다.
프랑스 원정군에게 살해된 알제리 저항운동가들
이번 반환은 2011년 알제리 역사가 알리 파리드 벨카디(Ali Farid Belkadi)가 파리 인간박물관 소장품 속에 보관된 유골을 발견하고, 이후 프랑스와 알제리 학계가 여러 차례 반환을 요청해 온 흐름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해당 두개골들은 1849년 비스크라(Biskra) 인근 자아트샤(Zaâtcha) 오아시스 공방전 당시, 콩스탄틴 남부에서 프랑스 원정군에게 살해된 알제리 저항운동가들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인골 반환을 둘러싼 지난한 역사
사실 이런 성격의 반환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국과 학계가 반환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2년에는 프랑스가 장기간의 법적 공방 끝에 뉴질랜드 웰링턴 국립박물관 '테파파 통가레와(Te Papa Tongarewa)'에 마오리족 미라 머리를 반환해야 했고, 2002년에는 '호텐토트의 비너스'로 알려진 사르티 바르트만(Saartjie Baartman)의 유해가 특별법(2002년 3월 6일 제정 법률 제2002-323호)의 제정을 거쳐 남아공에 정식으로 반환된 바 있습니다.
알제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서로가 상호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너무나 오랫동안 지나지 못했던 과거를 마침내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화해와 성찰의 메시지를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