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140여 개의 사원과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도시, 인도 위대한 제국의 수도 비자야나가라

1336년 탄생, 삼백 년간 번영한 힌두 제국

1336년, 상가마 형제인 하리하라 1세와 부카 라야 1세는 인도 남부 중앙 지역에 비자야나가라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 제국은 세 개의 세기에 걸쳐 눈부시게 번영했으나, 1646년 데칸 술탄국들의 공격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제국의 이름은 카르나타카 주에 위치한 수도 비자야나가라('승리의 도시'라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비자야나가라는 퉁가바드라 강변에 자리 잡았으며, 시바 신의 순례지와 힌두 사원을 포함하던 함피(Hampi)라는 오래된 정착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140여 개의 사원과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도시, 인도 위대한 제국의 수도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무슬림과 자이나교도 등 다양한 종교 공동체의 정착을 허용했습니다. 덕분에 힌두교 건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다종교적 기념물들이 풍성하게 조성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북방 무슬림 술탄국들의 진격에 맞서 힌두 가치를 지켜낸 요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동방 여행자들이 증언한 번영의 도시

페르시아 및 유럽(주로 포르투갈) 여행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비자야나가라는 번영하고 웅장한 도시로 140곳이 넘는 사원과 기념물을 갖추고 방문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실제로 1500년경 비자야나가라는 베이징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면적은 650제곱킬로미터에 달했으며, 당시 인구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140여 개의 사원과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도시, 인도 위대한 제국의 수도 비자야나가라

페르시아 여행자 압두르라자크(Abdur-Razzak)는 "눈이 본 적 없고 귀가 들어본 적 없는, 지상에 이와 같은 곳은 없다"고 극찬했습니다. 1440년 방문 당시 그는 왕궁 입구에 도달하기까지 일곱 겹의 성벽을 통과해야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역사가 로버트 시웰(Robert Sewell)에 따르면 왕궁 주변에는 아케이드가 늘어선 회랑, 바자르, 상점들, 공중목욕탕, 코끼리 마굿간, 조각된 석재 수로를 따라 흐르는 개울과 시냇물, 사원과 궁전들이 있었으며 모든 언덕마다 요새가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1420년 방문한 이탈리아인 니콜로 콘티(Nicolo Conti)는 도시 전역이 정원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둘레가 60마일(약 97km)에 달하고 거대한 성벽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1522년 도착한 포르투갈인 파에스(Paes)는 이곳을 "로마만큼 크고, 셀 수 없이 많은 호수와 운하, 과수원으로 매력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도시"라고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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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관개 시스템이 뒷받침한 자급자족 경제

발달된 관개 시스템 덕분에 도시는 자급자족이 가능했습니다. 인구 대다수가 성벽 안팎에서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제국 삼백 년간 빈번했던 장기 공성전에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23개의 저수지와 저수조, 그리고 수많은 둑과 우물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거대 도시의 남부 지역은 철광석과 적철광이 풍부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비자야나가라 시대의 유적지 다섯 곳과 함께 해당 시기의 주조소가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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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중심지, 왕권 중심지, 그리고 이슬람 지구

현재 고고학 유적지는 '신성 중심지(Sacred Center)'와 '왕권 중심지(Royal Center)' 두 구역으로 나뉩니다. 신성 중심지는 강 남안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종교 건축물이 가장 밀집된 지역으로, 많은 건축물이 제국 성립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반면 왕권 중심지(도심 핵심부)는 도로, 수도교, 저수지, 만다파(기둥 홀), 시장, 수도원 등 민·군 양면의 위엄 있는 구조물로 돋보입니다.

세 번째 구역인 '이슬람 지구'는 말랴반타 언덕 북쪽 사면과 타라리가타 문 사이에 위치하며, 군 장교들과 고위 무슬림들이 거처를 마련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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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리코타 전투와 제국의 몰락

북방 술탄국들에 맞서기 위해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이미 고아를 장악하고 있던 포르투갈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1565년 탈리코타 전투에서 패배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수도는 점령당해 파괴되고 불태워졌으며, 그 폐허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전투 이듬해 이곳을 방문한 이탈리아인 체사레 페데리치(Cesare Federici)는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집들은 여전히 서 있었지만 텅 비어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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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함피 기념물군

도시 중심부에 남아 있는 유적들은 '함피 기념물군(Hampi Group of Monuments)'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약 41.5제곱킬로미터 면적에 걸쳐 약 1,600개의 기념물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출처

유네스코(UNESCO) | 인도 고고학 조사국(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 비자야나가라 연구 프로젝트(Vijayanagara Research Project) | Burton Stein, 『The New Cambridge History of India: Vijayanagara』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