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의 비밀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날 요르단의 걸작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페트라 왕국은 서기 106년 로마에 의해 정복되었죠.

그런데 그보다 더 남쪽, 이미 아라비아 반도에는 또 다른 강력하고 유서 깊은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24년경 나바테아인에게 굴복한 이 왕국의 이름은 바로 듯단(Dedan) 왕국입니다.

그 이전 시기 듯단 왕국은 아카바만 주변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중요한 문화적·경제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리히안(Lihyan)이라고도 불린 이 왕국의 수도는 현재 오아시스 도시 알 울라(Al-Ula)에서 북쪽으로 약 4km, 테이마(Teima)에서 남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듯단 시였습니다.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 의 비밀

듯단은 향료 무역로가 지나는 북부 아라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隊商) 거점 중 하나였으며, 성경 본문과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설형문자 점토판, 즉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재위 기원전 550~549년)의 연대기에도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듯단 사람들은 자체 언어와 문자를 갖춘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그 결과물에는 아랍 전통과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이 조화롭게 녹아 있습니다.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 의 비밀

왕국의 기원은 기원전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추정됩니다. 바로 이 시기, 오늘날 듯단 사자 무덤으로 불리는 인상적인 암석 묘들이 탄생했습니다.

알 울라의 제벨 듯단 산맥 동쪽 암벽에는 20개가 넘는 벽감(壁龕)이 파여 있으며, 그중 일부는 수호 사자의 대형 부조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벽감들은 산비탈의 다양한 높이에 사각형 모양으로 조성되었고, 깊이는 약 2m에 이릅니다. 조성 시기는 기원전 600년에서 500년 사이로 밝혀졌습니다. 이곳에 잠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연구자들은 지역 총독이나 그에 준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 의 비밀

무덤에 도달하려면 주요 고고학 유적지에서 약 1km를 이동한 뒤, 고대 오아시스가 펼쳐진 계곡 위 절벽을 따라 약 50m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사자 부조가 함께한 단 두 개의 무덤은 왕, 왕자 혹은 기타 중요 인물의 안식처를 표시하며, 장식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특히 바빌로니아식 사자 모티프—를 뚜렷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 의 비밀

일부 무덤은 내부에 방을 두고 있으며, 그 안의 벽이나 바닥에는 추가 벽감이 새겨져 있습니다. 낮은 경사면에는 주로 개인 무덤이 자리하고, 일부에는 피장자의 이름을 알려주는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무덤 하나에 새겨진 비문은 이곳이 원래 오늘날 예멘의 마인(Ma'in) 출신, 듯단의 미나인 공동체 구성원의 소유였음을 보여줍니다. 미나인들은 오아시스에 작은 식민지를 이루고 살았던 상인들로, 듯단 왕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파트너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듯단 사람들은 서기 106년 로마가 나바테아 왕국을 정복하고 옛 국경을 재편하면서 자유와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상단을 호위하던 로마 군단병들은 듯단 시에서 불과 10km 앞인 그 지점에서 행진을 멈췄고, 끝내 그 도시를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페트라보다 오래된 왕국의 흔적, 알 울라  듯단 사자 무덤 의 비밀

그러나 시간은 서기 2세기 어느 시점에 멎습니다.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아마도 아라비아 반도의 더 강력한 세력에 흡수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자 무덤을 건설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안개 속에 가려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