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성분을 넣은 잉크는 중세가 아니라 그리스·로마 고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소멸한 도시 헤르쿨라네움에서 출토된 파피루스 조각 두 점에 대한 분석 결과가 이를 입증했다.

X선 형광 분석 기술을 통해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의 잉크에서 상당한 농도의 납이 검출된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싱크로트론이 밝혀낸 뜻밖의 발견
과학자들은 2015년부터 헤르쿨라네움의 파피리 가문 빌라(Villa dei Papiri)에서 발견된 탄화된 파피루스를 전개하지 않고도 내용을 읽어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그르노블 싱크로트론(ESRF)의 X선 영상 기술 덕분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바로 당시 사용된 잉크의 화학 조성에 높은 수준의 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
중세부터 널리 보급된 것으로 여겨졌던 예상치 못한 첨가물의 존재였다. 이 발견은 국제 학술지 PNAS에 논문으로 게재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라틴어 파피루스에 글씨를 쓰는 데 쓰인 잉크의 조성이 탄소 기반이라고만 믿어 왔습니다. 금속 잉크는 서기 5세기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으며,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넘어가는 중세에야 표준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양피지는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필사자들이 잉크가 잘 붙도록 철을 첨가했을 것이라 추정했죠. 이른바 '금속 갈릭 잉크(metallo-gallic ink)', 즉 철분 잉크입니다."라고 CNRS 명예 연구 소장이자 파리 텍스트 연구 및 역사 연구소 소속의 파피루스학자 다니엘 들라트르(Daniel Delattre)는 설명한다.
고대의 잉크 제조법, 그리고 납의 정체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탄화된 파피루스 두루마리(volumen) 확대 사진 © Emmanuel Brun
고대의 잉크는 그을음에서 얻었다. 매끄러운 벽면의 방에서 석탄을 태워 대량의 그을음을 만들고, 이를 벽에서 긁어 모았다. 여기에 아랍검을 혼합해 작은 알갱이로 빚은 뒤 물에 희석해 잉크를 완성했다.
"이는 기원전 1세기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기록한 제조법으로, 서기 1세기 박물학자 대(大)플리니우스가 확인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잉크에 금속이 들어갔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라고 들라트르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에서 검출된 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잉크 제조에 필요한 물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생긴 납의 흔적일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수도관은 납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이후에는 납 재질 먹통이 잉크를 오염시켰을 가능성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화학 분석에서 확인된 양은 의도적으로 첨가된 것임을 증명합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새로운 해독의 길을 열다
전문가들에게 이번 발견은 헤르쿨라네움의 탄화된 문서, 즉 고대에서 현대까지 직접 전해진 유일한 장서를 해독하려는 시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잉크와 탄화된 파피루스의 굴절률 차이를 활용하는 X선 기법이 이미 효과를 입증한 가운데, 금속 성분의 존재는 대비 효과를 한층 더 높여준다.
"금속성 납 안료 덕분에 두루마리 깊숙이 묻혀 있던 텍스트를 그르노블 싱크로트론의 X선으로 더욱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들라트르는 말한다.
매우 취약한 문서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와 함께 파괴된 헤르쿨라네움에서 1752년부터 1754년 사이 발견된 필사본은 총 1,785점에 달한다. 그러나 기계적 방법으로 완전히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585점뿐이다. 상당수가 작업 과정에서 산산조각 났고, 400점은 끝내 전개되지 못했다. 이 문서들은 모두 이탈리아 나폴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번에 분석된 두 조각은 1802년 나폴리 국왕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하사한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에서 나온 것으로, 현재 프랑스 학사원(Institut de France) 소장품으로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