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멕시코 정부는 깃털과 금으로 장식된 귀중한 아즈텍 관모를 오스트리아에 반환해 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했습니다. 현재 빈 세계박물관(Welt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이 관모는 아즈텍 황제 목테수마(1466~1520)의 것이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습니다.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엘 페나초(El Penacho)"라 불리는 이 아즈텍 관모는 오스트리아 빈의 세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오스트리아에 보관되어 온 이 유물은 멕시코 정부로부터 지속적으로 반환 요청을 받아왔습니다.

에메랄드빛 케찰새의 긴 깃털과 금속 장식으로 이루어진,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이 아즈텍 관모는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상징하며, 멕시코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긴장을 낳고 있습니다. 약 500년간 오스트리아에 보관되어 온 것입니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최근 부인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스 뮐러에게 빈 세계박물관에 전시된 "페나초"를 돌려보내도록 오스트리아 당국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이는 2021년 멕시코 독립 200주년 기념 행사 때 이 소중한 깃털 관모를 멕시코에서 잠시 선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동하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한" 깃털 관모

오스트리아 수도의 구 민족학 박물관인 빈 세계박물관 입장에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반환 요청된 깃털 관모는 이동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다"는 점입니다. 높이 1.30m, 폭 1.63m, 무게는 겨우 850g에 불과한 이 유일무이한 관모는 현재 방문객의 발소리 진동까지 견딜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진열장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500년이 넘었다는 걸 상상이나 되십니까!"라고 AFP 통신에 답한 박물관 큐레이터 제라르 반 뷔셀(Gérard van Bussel)은 강조합니다. "식민지 이전 시대의 모든 관모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이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오스트리아와 멕시코 양국 전문가들이 함께 진행한 대대적인 복원 작업 이후 양국이 이미 합의한 바이기도 합니다.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아즈텍 황제 목테수마(1466~1520) 삽화. ©Alessandro Lonati/Leemage/Afp

페나초는 어떻게 유럽으로 건너갔는가

"페나초"가 정확히 어떤 경위로 유럽에 들어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은 16세기 말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21년 아즈텍 제국의 피로 물든 최후의 순간 이후, 스페인 선박들은 누에바 에스파냐(신대륙)의 막대한 보물들을 구대륙으로 운송하기 시작했고, 놀라운 물건들이 유럽에 도착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인들이 아즈텍 수도를 정복한 지 약 75년 후인 1596년,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한 성의 재고 목록에는 화려한 깃털과 금판으로 만들어진 "모리스크(Morisque)"식 관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1519년 7월 에르난 코르테스가 카를 5세 국왕에게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풍성한 예물과 함께 언급했던 바로 그 깃털 관모일까요? "머리에 얹는 커다랗고 화려한 관모로, 금 장식품 68개가 달려 있다." 어쨌든 멕시코의 깃털 장인들인 아만테카(amantecas)의 뛰어난 작품들은 관모든 전사들의 방패(시말리(cimalli))든 많은 수가 대서양을 건너왔습니다.

"카를 5세 시절에 유럽으로 들어온 뒤 카를 5세에서 대공 페르디난트 2세로 넘어갔다는 물건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되지만 증명할 수 없는 신화일 뿐입니다"라고 빈 박물관 큐레이터는 2014년 멕시코 출신 감독이자 작가 하이메 쿠리 아이사(Jaime Kuri Aiza)가 촬영한 다큐멘터리 '목테수마의 페나초, 고대 멕시코의 깃털 공예'(El penacho de Moctezuma, plumaria del Mexico antiquo) 인터뷰에서 설명했습니다.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티롤 지방의 암브라스 성. 이곳에서 소위 목테수마의 관이라 불리는 유물의 존재가 16세기 말 재고 목록에 등장합니다. ©Emmanuel Brunner/Wikipedia Commons

빈 박물관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여정

빈 박물관에 도착하기 전, 이 깃털 관모는 실제로 티롤 인스부르크 근처 암브라스 성에 있는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2세의 진기한 수집품 진열실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대공이 사망하자 황제 루돌프 2세가 이를 상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잊혀진 채 이 관모는 암브라스 성에 몇 세기를 더 머물렀습니다. 19세기에야 빈으로 옮겨진 페나초는 1889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시립 자연사 박물관에서 민족학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오스트리아 국립은행에 다른 보물들과 함께 보관되기도 했습니다. 1946~1947년 스위스 취리히에 전시된 것(오스트리아 국경 밖으로 나간 유일한 사례) 이후 이 깃털 관모는 다시 빈으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민족학 박물관, 후에 세계박물관으로 개칭된 곳에 남아 있습니다.

왜 "목테수마의 관"이라 불리는가?

이것이 실제로 아즈텍 통치자가 착용했던 물건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멕시코의 통치자들은 삼각형 디아뎀 형태의 머리 장식을 착용했다고 합니다. 반면, 이런 관모는 매우 높은 신분의 인물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목테수마의 것이라는 대중적 속설에도 불구하고, 이 관모가 실제로 이 틀라토아니(tlatoani)(아즈텍 주권자의 칭호)의 것이었다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아마도 멕시코 군주가 코르테스를 자신에게서 떼어놓고 제국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로 하사한 예물 세트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마드리드 국립도서관(스페인) 소장 코덱스 두란(1579년)의 익명 작품.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와 황제 목테수마(1466~1520)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인물들의 이마는 삼각형 디아뎀으로 둘러싸여 있다. © Leemage /AFP

상징으로서의 페나초, 문화재 반환 논쟁

멕시코의 전문가들은 유물이 유럽에서 다시 옮겨질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국립대학 연구자 이반 에스카미야(Ivan Escamilla)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 유물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미 "기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정리된 듯한 문제를 왜 다시 꺼내는 걸까요?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크레스포(Jose Antonio Crespo)는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상징을 활용하고 있다"며 "이 관모는 그런 상징 중 하나"라고 분석합니다. 콜럼버스 이전 세계의 위대함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넓게 보면, 이번 요청은 식민지 시기에 "약탈당한"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목테수마 황제의 깃털 관모  페나초 , 멕시코가 오스트리아에 반환 촉구
중앙아메리카 신열대구의 케찰새. 청록색과 파란색 깃털을 지녔으며, 긴 꼬리깃은 수컷만이 가지고 있다. 이 새의 이름은 나후아틀어 케찰리(quetzalli, "큰 초록 깃털")에서 유래했다. 깃털 달린 뱀, 즉 케찰 뱀을 의미하는 멕시코의 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의 이름에도 등장한다. ©D. Hatcher / Public domain

고대 아즈텍인들에게 깃털은 종교적 상징성뿐 아니라 권위를 표시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깃털 착용은 일종의 언어로 사용되었습니다. 히스패닉 이전 세계의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가 바로 깃털 달린 뱀의 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이었습니다.

B.A with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