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펠리에 남쪽에서 기원전 2세기 선술집 유적 발굴
프랑스 몽펠리에 남쪽, 고대 항구 도시 라타라(Lattara)에서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선술집 유적이 발굴됐습니다. 급격히 변화하던 갈리아 세계에 로마에서 들어온 혁신적인 상업 공간의 흔적입니다.

고대 도시 라타라 유적에서 발견된 기원전 2세기 선술집 유적. 빨간색으로 표시된 세 곳은 화덕의 흔적이다.
프랑스 최초의 '타베르나'
갈리아인들이 호화로운 연회를 즐겼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선술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이런 시설이 어디서 처음 등장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렸습니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로마식 술집 타베르나(tabernae)가 에로 주(Hérault) 라트 근교의 라타라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무려 2100년 된 유적입니다.
몽펠리에에서 5km 남쪽에 위치한 라타라는 로마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나르보네즈(Narbonnaise) 속주에 자리한 고대 항구 도시입니다. 이번에 발굴된 최초의 '상업용 선술집'은 도시 성벽 안쪽, 기원전 2세기 지층에서 출토됐습니다. 유적은 두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테라코타 화덕 세 개와 맷돌 받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빵소를 발견한 줄 알았다"라고 CNRS(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지중해 사회 고고학 연구소의 가엘 피크(Gaël Piques) 연구원이 설명했습니다. 그는 게티즈버그 칼리지의 벤저민 룰리(Benjamin Luley)와 함께 학술지 안티퀴티(Antiquity)에 이번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말발굽 모양 대형 벤치와 음식물 찌꺼기
하지만 발굴이 진행되면서 중앙 화덕을 두른 말발굽 모양의 대형 벤치를 갖춘 식당 공간의 흔적이 차례로 확인됐습니다. 이어 음식물 찌꺼기와 도축 잔해, 즉 소의 견갑골과 양의 정강이뼈가 가득 담긴 구덩이도 발견되었습니다.
"개인 소비량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고 고고학자는 덧붙였습니다. 여기에 음료 용기 파편, 접시류, 암포라(양수병) 조각들, 그리고 마르세유 주화까지 더해지면서 유적의 정체가 명확해졌습니다. 가엘 피크 연구원은 "선술집을 발견한 것이 분명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로마 군단이 가져온 새로운 문화
로마 갈리아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 새로운 형태의 시설은 아마도 로마 군단의 짐꾸러기 속에 실려 라타라까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갈리아 세계에서 라타라는 석호 끝자락에 자리한 상업 항구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 그리스와도 물품을 교환하는 무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와인, 올리브 오일, 생선 소스—유명한 가룸(garum)—이 이 도시의 부두를 오갔습니다.
2013년에는 같은 유적지에서 에트루리아 암포라 내용물 분석과 포도압착기 발견을 통해 프랑스 최초의 포도재배 증거가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는 랑그독-루시용 지역에서 와인 생산이 이미 기원전 500년경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에서 3세기 뒤 첫 선술집이 발견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갈리아인은 누구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셀트 문화권에 속한 모든 집단을 통칭해 '켈트'라고 불렀고, 로마인들은 이들을 갈리(Galli), 즉 갈리아인이라 불렀습니다. 카이사르의 정복(기원전 58~51년) 이전까지 '갈리아'는 하나의 통일체 없이 수많은 영토로 나뉘어 있었으며, 서로 충돌을 반복하던 여러 민족들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지중해 연안 지역은 이미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나르보네즈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