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이야기. '오를레앙의 처녀'로 불리는 잔 다르크(Jeanne d'Arc)가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반지가 최근 프랑스 방데(Vendée) 지역의 퓌두푸(Puy-du-Fou) 테마파크에 의해 인수되었다. 그런데 이 반지는 수출 허가증 없이 영국을 떠난 것으로 드러나면서, 영국 당국이 채널 해협 건너편으로의 반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16년 2월 런던의 타임라인 경매(Timeline Auctions)를 통해 판매된, 잔 다르크의 반지로 추정되는 유물
수출 규정 위반 논란
2016년 3월 20일 퓌두푸에서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공개된 이 반지는, 사실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는 가치가 39,219파운드를 초과하는 물건에 대해 원칙적으로 수출 허가증이 필요한데, 이 유물은 그러한 절차 없이 국경을 넘었던 것이다. 런던에서 타임라인 경매사에 출품될 당시 1만9천 유로로 감정되었던 이 반지는 2016년 2월 26일 프랑스 테마파크에 무려 37만6,833유로, 즉 약 29만4,676파운드라는 금액에 낙찰되었다.
게다가 이 반지의 진위 여부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해지는 묘사에 따르면 이 반지는 여러 개의 십자가 문양이 장식된 황동 반지로, '예수 마리아(Jesus Mari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영국 일간지 더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의 보도에 따르면, 이 반지는 잔 다르크가 1431년 5월 30일 노르망디 공국의 수도이자 영국령이었던 루앙(Rouen)에서 산 채로 화형당하기 전날까지 윈체스터 대주교 헨리 보퍼트 추기경(Henry Beaufort)의 손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보베 주교 피에르 코숑(Pierre Cauchon)이 회수했으나, 재판(1431년 2월 21일~5월 23일) 도중 법정을 대신 이끌게 된 영국 대주교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잔 다르크의 반지는 세 개가 알려져 있다"
잔 다르크 전문 역사학자인 콜렛 보느(Colette Beaune, 파리10대학 명예교수)는 "하지만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 피에르 코숑의 반지와 퓌두푸가 구입한 반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알려진 잔 다르크의 반지는 세 개다"라고 설명한다.
첫 번째 반지
첫 번째 반지는 기 드 라발(Guy de Laval) 영주의 편지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잔 다르크가 자신의 할머니, 즉 뒤 게클랭(Du Guesclin)의 미망인에게 작은 금반지를 선물하고 싶어 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이 반지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두 번째 반지
두 번째 반지는 1431년 재판 조서에 등장한다. 콜렛 보느 교수는 "그것은 잔 다르크의 오빠가 준 것이며, 묘사 정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더 텔레그래프가 언급하는 것이 바로 이 반지로 보인다. 이것 역시 행방은 묘연하다.
세 번째 반지
지금 모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세 번째 반지다. 보느 교수는 "1431년 3월자 심문 기록에 언급되어 있다"며, 이 반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영국은 이 반지를 통해 잔 다르크를 마녀혐의로 유죄판결하고자 했다. 승리를 거듭하게 해준 마법의 아이템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반지는 금도금된 황동 반지로, 로렌 지방 돔레미(Domrémy)에서 부모님이 딸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예수 마리아(Jesus Maria)'라는 문구와 세 개의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15세기에 흔히 사용되던 표현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반지에 대한 세부 묘사는 놀랄 만큼 정확하다. 역설적이게도 반지는 부르고뉴파(잔 다르크를 영국에 넘긴 세력*)의 손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재판 당시 판사들은 실물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유죄판결문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지만, 판사들은 처녀에게 상세한 묘사를 끌어내는 데 집착했다.
잔 다르크의 현존하는 유일한 동시대 초상화(1429년). 파리 고등법원 문서의 여백에 그려져 있다. © BNF
그렇다면 퓌두푸의 반지는?
이 세 번째 반지가 퓌두푸가 구입한 반지와 일치할까? 장식, 즉 문구와 십자가 문양은 일치한다. 지난해 12월 옥스퍼드 실험실에서 진행된 X선 형광 분석 결과, 반지의 금속은 15세기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 테마파크가 구입한 이 보석은 600년 동안 잉글랜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수세기에 걸친 여러 상속 과정에서 어떤 문서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콜렛 보느 교수는 "1909년에 처음 공개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이후 1914년 왕립 무기고(Royal Armouries) 소속 인물이 화가 어거스터스 존(Augustus John)으로부터 구입했는데, 존 자신은 헨리 보퍼트 추기경의 후손인 레이디 오톨린 모럴(Lady Ottoline Morrell)에게서 이 반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공개적으로 기록된 반지의 행적
1950년대부터 이 반지의 행적은 완전히 공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명한 반지임에도 불구하고 비밀이나 숨겨진 미스터리는 없으며, 여러 전시회에도 출품되었다. 1947년부터 제임스 애슨 박사(Dr. James Asson)가 소유했던 이 반지는 1953년 라튀르비(La Turbie), 1954년 루앙, 그리고 1956년 파리에서 열린 '잔 다르크와 그의 시대(Jeanne d'Arc et son temps)' 행사에서 전시되었다. 이후 소더비(Sotheby's)나 크리스티(Christie's) 경매를 통해 여러 차례 판매되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같은 반지였을까? 진위가 입증되었는가? 정말 잔 다르크가 소유했을 수 있는 반지인가? 콜렛 보느 교수는 "20세기 초의 전시 카탈로그를 열람할 수 있다면, 이 반지가 '잔 다르크와 연관된', '잔 다르크의 소유였던', '잔 다르크의' 반지로 판매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같은 반지인지 대조하고, 무게나 낙찰가, 나아가 보험 가액까지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런 인물의 소유물이었다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어야 마땅하다.)
또 다른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 인포(France Info) 방송에 출연한 오를레앙 잔 다르크 센터(Centre Jeanne d'Arc d'Orléans) 관장 올리비에 부지(Olivier Bouzy)는 "나는 회의적이다. 판매된 반지와 잔 다르크 본인이 남긴 유물 묘사 사이에는 중대한 모순이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이 모순은 반지의 재질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옥스퍼드의 X선 형광 분석은 재판 조서에 기록된 '황동(brass)'이 아니라, 새김 자국 깊은 곳에 금 잔여물이 남아 있는 '은(silver)'을 검출했기 때문이다.
이 반지는 3월 20일 열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 1430년 5월 23일 콩피에뉴 공방전에서 포로로 잡힌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파에 의해 1만 파운드라는 금액으로 영국에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