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터 크레인(Walter Crane)이 1874년에 그린 동화 '미녀와 야수' 삽화
동화 속에 숨겨진 선사 시대
연구 배경. 파란 수염(Bluebeard), 당나귀 가죽(Donkey Skin)… 동화는 결코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연구 대상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는 이 신비로운 이야기들의 기원을 추적해 보자는 발상이 두 명의 연구자에게서 나왔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부 우화는 무려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대장장이와 악마(The Blacksmith and the Devil)에 담긴 파우스트 테마는 6000년 전으로,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는 4000년 전에 탄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포르투갈 리스본 대학교의 인류학자 사라 그라사 다 실바(Sara Graça da Silva)와 영국 더럼 대학교의 잠시드 J. 테라니(Jamshid J. Tehrani)가 학술지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발표한 연구의 결론입니다.
진화생물학에서 빌려온 분석 방법
연구팀은 진화생물학에서 널리 쓰이는 비교 통계 및 계통분석(phylogenetic) 방법을 활용해 동화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275개의 동화를 수집한 뒤, 변형 판본들을 정리해 76개의 기본 구조로 축소하고, 인도유럽어족 내에서 이들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추적했습니다.
두 전문가는 '동화 계보도'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먼 구전 전통에서 유래한 여러 동화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 즉 대체로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보다 훨씬 앞선 것임을 입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또한 19세기에 수많은 동화를 채록한 그림 형제 역시 자신들이 기록한 독일 전통 설화 중 일부가 원시 인도유럽어 기원이라고 확신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문제가 된 방법론
그러나 프랑스의 선사시대 역사가 장폴 드물(Jean-Paul Demoule)은 이 결론에 회의적입니다. 물론 연대 측정 자체가 아니라 방법론에 대한 의문입니다. 파리 1대학교와 프랑스 대학원(Institut Universitaire de France)에서 유럽 원사(原史)를 가르치는 그는 "먼 선사 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는 고대 서사 테마가 있다는 생각과, 이런 이야기들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동화들을 서로 분류하기 위해 계통수(tree) 구조를 강제로 적용한 뒤 각 가지의 지속 기간을 추정하면서, 어떤 측정 수단을 사용했는지 설명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며 "유전학에서조차 이 부분은 여전히 논쟁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도유럽어권에만 국한된 편향?
반론. 이 연구자는 2013년의 선행 연구를 언급하며, 다른 팀이 도출한 결과가 사라 그라사 다 실바와 잠시드 J. 테라니의 주장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샤를 페로의 동화 요정들(The Fairies)의 700개 변형 판본을 인도유럽어족뿐 아니라 비(非)인도유럽어권, 즉 바스크어, 튀르키예어, 에스토니아어, 핀란드어, 러시아의 핀노우고르어족 언어들에서도 조사한 이 연구는, 5개 주요 지리적 권역에 해당하는 5개의 큰 집단이 드러나는 그래프를 만들어냈습니다.
장폴 드물은 "동화가 세대 간에 전승되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좁은 유럽 반도 안에서 사방으로 유통되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고 덧붙입니다. 그는 "두 저자가 인도유럽어권 동화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편향이었을 수 있다"며 "이런 동화들은 인도유럽어 외에도 다른 곳에 존재한다. 유럽의 모든 언어로 알려진 모든 동화를 분석하는 작업은 아직 남아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