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입구, 새로운 기념품숍, 그리고 무엇보다 정돈된 뼈 벽까지. 2017년 4월 1일부터 파리 카타콤을 찾는 방문객들은 이 미스터리한 지하 박물관의 1단계 리노베이션 성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파리 카타콤의 뼈 벽 복원 현장.
새롭게 단장된 출입구와 편의시설
4월 1일 토요일부터 방문객들은 르네 코티 대로(René Coty) 21번지에서 새로운 매표소와 기념품숍을 만나볼 수 있다. 윈스(Yoonseux) 건축사사무소와 서점 운영사 아르테움(Arteum)이 각각 시공한 이 시설들은 '빛'을 테마로 설계되어, 약 45분간 이어지는 음산한 지하 탐방을 마친 뒤 다시 생명의 세계로 돌아왔다는 느낌을 자아내도록 했다.
매표소는 현재 출입구에 인접한, 클로드 니콜라 르두(Claude Nicolas Ledoux)가 1787년에 지은 파빌리온을 재정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관람 동선도 단축되었고 뼈 벽의 일부는 복원 작업을 거쳤다. 여기에 긴 줄을 피할 수 있도록 운영 시간이 저녁 8시 30분까지 연장되었으며, 사전에 우선입장권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죽은 자들의 제국, 오세리움
"오, 이 뼈들아!" 덴페르 로셰로(Denfert-Rochereau) 지구, 14구 지하 20미터 깊이에 자리한 파리 카타콤에는 700미터가 넘는 갱도를 따라 수만 개의 뼈가 놓여 있다. '해그(hague)'라 불리는 담장—바이킹어에서 유래한 단어—은 오직 두개골과 대퇴골, 경골로만 구성된다.
이 지하 세계의 입구에는 "여기는 죽은 자들의 제국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상인이 걸려 있다. 빅토르 위고와 알렉상드르 뒤마를 매료시켰던 이곳은 지금도 매년 5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1809년 일반 공개된 이래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은 이 기괴한 벽들을 감상해 왔다.
"이 합장묘는 파리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시립 박물관입니다. 도시 전체 지하에 펼쳐진 800헥타르 규모의 지하 채석장 가운데 겨우 10분의 1을 차지할 뿐이며, 흔히 이 둘이 혼동되곤 합니다"라고 카타콤을 총괄하는 수석 문화재 큐레이터 실비 로빈(Sylvie Robin)이 설명했다.

카타콤 최초의 유해 안치를 알리는 상인. 1787년 생당송 묘지의 유해가 처음 옮겨졌다. © Bernadette Arnaud
200년 넘게 이어진 복원 작업
복원팀은 연 2회 뼈 벽의 일부를 손질하며 수백 년 된 이 섬세한 건조물을 관리한다. 사실 1786년, 파리 묘지의 포화 상태와 공동묘지에 매장된 수천 구의 시신 부패로 인한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덤과 공동묘지의 유해를 지하 갱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중세 이래 파리를 짓는 데 쓰인 석재를 채굴해 온 바로 그 지하 공간이었다. 생당송(cimetière des Innocents) 묘지가 가장 먼저 비워졌고, 이후 파리 중심부의 다른 묘지들이 차례로 뒤따랐다.

'무덤의 등불' 시설. 19세기에는 이 기름등이 환기를 위해 사용되었다. 불꽃이 내뿜는 뜨거운 공기가 모든 갱도에 공기의 흐름을 일으켰다. © Bernadette Arnaud
높은 습도와의 끝없는 싸움
"정강이뼈 하나 주세요!" 괴기한 벽 한 면을 거의 다 마무리한 복원사가 동료에게 소리친다. "이 뼈 소재는 매우 연약합니다. 습도가 지나치게 높은 이곳의 기후는 사실상 보존과 양립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현장 책임자는 털어놓았다.
그래서 모든 갱도에 석재 기초를 설치해 뼈가 축축한 지면과 직접 닿지 않도록 했다. "유해 사이로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뼈를 엮어 메시(mesh) 구조의 벽을 만들기도 합니다"라고 큐레이터는 덧붙였다.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뼈들을 따로 모아두는 '합장묘 안의 합장묘'까지 조성되어 있다.
복원사들은 집중된 표정으로 대중에게 전시될 대퇴골과 두개골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른다. 개장 초기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재현되어 온 배치 방식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벽들 뒤편에는 깊이 3.5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무작위로 쌓인 수백만 개의 뼈가 숨겨져 있으며, 채석장이 남긴 잔토가 "실제로는 전체 부피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실비 로빈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