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마녀는 언제 서양에 나타났을까? 중세 유럽 마녀사냟의 역사

할로윈 시즌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마녀와 마법사. 고대 이교도 축제에서 유래한 이 축일 이면에는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길고 어두운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중세에 등장해 수 세기 동안 박해받다가 결국 화형에 이르기까지 한 마녀들, 우리는 그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역사연구센터에서 중세 말기 마녀 표상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생 막심 페르벨리니(Maxime Perbellini)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마녀는 언제 서양에 나타났을까? 중세 유럽 마녀사냟의 역사
안식일(사바트)로 날아가는 마녀들(19세기 판화). 빗자루를 타는 모습이 그려지기 전, '소르티아리아(sortiaria)'라 불린 마녀들은 주로 염소 같은 짐승에 올라탔습니다.

호박 등불과 빗자루, 할로윈 속 마녀의 흔적

할로윈이 되면 호박은 등불로 변하고, 마녀들은 더 이상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 않습니다… 물론 해리 포터 덕분이겠죠! 하지만 중세에 등장해 주로 여성이었던 이 존재들이 왜, 어떻게 수백 년간 박해받으며 화형대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마녀는 언제 서양에 나타났을까? 중세 유럽 마녀사냟의 역사

중세 말기 마녀 표상 전문가인 막심 페르벨리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녀의 역사를 짚어봅니다.

유럽에서 '마녀'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인가?

이 단어의 기원과 어원을 두고는 활발한 학계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프랑스어에서 처음 등장한 시기는 11세기 중반, 1060년경의 문학작품 『아이네이아스 로망(Roman d'Éneas)』입니다. 그보다 앞선 1000년 이전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약초를 다루며 저주를 내렸다고 의심받던 여성들이 '헤르바리아에(herbariae)', '소르티아리아에(sortiariae)'에서 유래한 명칭, 혹은 '파시나토르(매혹하는 자)', '스트리고스', '악한 여자' 등으로 불렸습니다. 마녀를 지칭하는 어휘는 매우 다양했습니다. 실제로 프랑크족의 살리카 법전이 제정된 500년경부터 샤를마뉴 대제와 여러 종교회의에 이르기까지 마법·마술·이교 사이의 혼동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왜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마녀는 언제 서양에 나타났을까? 중세 유럽 마녀사냟의 역사도시 상공을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마녀들을 묘사한 19세기 판화. © MARY EVANS/SIPA

여전히 뜨거운 논쟁을 낳는 커다란 미스터리입니다! 밤에 짐승—주로 염소—을 타고, 나중에는 빗자루를 타고 떠나는 야간 비행은 이교의 힘과 결부되어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비행에 관한 첫 언급은 1095년 독일 보름스의 주교 부르카르트가 집필한 『교정자이자 의사(Corrector sive Medicus)』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1392년경 집필된 기록서 『파리의 가장(Le Ménagier de Paris)』에는 여성들이 마녀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방에 빗자루를 두지 않았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사바트를 위해 날아가는 여인은 방대한 마녀상의 한 단면일 뿐입니다.

'사바트(안식일)'란 무엇인가?

사바트 개념 역시 사학적으로 뜨거운 논쟁 주제입니다. 최초의 사바트가 언급된 곳은 알프스 일대, 특히 스위스 보 주(Vaud)로, 1430년에서 1440년 사이였습니다. 15세기에 '사바트'라는 말은 한밤중 인적 끊긴 황야나 숲속에 모여 의식과 제사적 난행에 참여하는 '술사들의 야간 집회'를 가리켰습니다.

13세기 이후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교회가 마녀 근절에 나섰는가?

13세기 중반, 술사의 지위가 '악마의 영향 아래 있는 자'로 격하되면서 이단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신의 은총을 거부하고 자신의 행위를 사탄에게 바치는 자는 지옥의 영원한 불길에서 타오르리라는 것이죠. 이른바 팍툼 헤레티칼레(Factum hereticale), 즉 '이단적 행위' 개념은 클레멘스 5세, 요한 22세 등 여러 교황의 추진 아래 교회가 만들어냈습니다. 그때까지 주교들의 관할이던 일은 일련의 교황 교서를 거쳐 종교재판소(Inquisition)의 손으로 넘어갔고, 남녀 술사들은 이 이단 사냥의 주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마녀사냟'의 피해자 수는 어느 정도로 추정되는가?

미국 역사가 리처드 키크헤퍼(Richard Kieckhefer)가 제시한 연표에 따르면, 1300년부터 1420년까지는 매년 5~10건 정도의 마녀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후 1500년까지는 연간 40건으로 늘어났습니다. 추세는 계속 상승하여 16~17세기 사이에는 약 30,000건의 재판이 이루어졌고 사형 선고 비율도 매우 높았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스위스에서 두드러졌습니다(아래 통계 참조).

첫 화형은 언제 이루어졌나?

730년경 『알라만 법령(Lex Alamannorum)』에는 '스트리아에(striae)' 또는 '헤르바리아에(herbariae)', 즉 마녀나 약초 할멈으로 불린 사람들을 불속에 던진 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789년 샤를마뉴의 토지대장(카르툴라리)에는 마녀로 의심받는 자들의 시신을 태우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관련 기록은 놀랍도록 이른 시기부터 나타납니다. 한편 역사에 기록된 마지막 화형 마녀는 안나 괴들린(Anna Gödlin)으로, 1782년 6월 스위스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경우는?

1824년에는 로트에가론 주 부르넬 코뮌에서 마녀 혐의를 받은 한 여성이 농민들에 의해 불에 타는 형을 당했고, 1856년에는 오트피레네 주 카말레스에서 또 다른 여성이 화덕에 던져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공식적인 마녀재판이 사라진 뒤에도 마녀에 대한 공포와 폭력은 오랫동안 이어진 셈입니다.

마녀재판 사형 선고 통계

유럽 전역은 12세기부터 거대한 '마녀사냟'에 돌입했으며, 고발 건수의 70~80%가 여성과 관련되었고 이들 중 60%가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 스위스: 15~18세기 사이 8,000건의 재판에서 5,000건의 사형 선고
- 영국 제도: 5,000건의 재판에서 1,500~2,500건의 사형 선고
- 스칸디나비아(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5,000건의 재판에서 1,500~1,800명의 희생자
- 남유럽: 선고율이 가장 낮은 지역. 1580~1650년 스페인에서는 3,500건의 재판에도 사형 선고가 극히 드물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클로드 고바르(Claude Gauvard), 『마녀라는 소문: 1390~1391년 파리 시정관에게 마녀죄로 고발된 네 여인』
쥘 미셸레(Jules Michelet), 『마녀(La Sorcière)』(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