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만 해저, 6,600만 년 전의 흔적
멕시코만의 잔잔하고 맑은 바다 위 30미터 높이에 세워진 시추선에서,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공룡 멸종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소행성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해저 깊숙한 곳을 뚫고 있다.
2016년 4월, 유카탄 반도 해안에서 33km 떨어진 지점에서 예산 1,500만 달러가 투입된 '364차 원정(Expedition 364)'이 시작되었다. 이번 탐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해저에 잠긴 충돌 크레이터를 과학자들이 직접 조사하는 사건이다.
파도와 상어에 둘러싸인 이 시추선은 바로 칙슐루브 크레이터(Chicxulub crater)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칙슐루브 크레이터는 약 6,600만 년 전 백악기 말, 직경 10km에 달하는 소행성이 초속 30km의 속도로 지표면에 충돌하면서 형성된 지름 200km의 거대한 함몰 구조다.
소행성의 비밀을 쫓는 국제 연구단
약 2,000㎡ 규모의 실험실 안에는 북미,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온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미생물학자 약 30명이 미세 화석이나 소행성의 분쇄된 잔해를 찾고 있다. 이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궤도 사이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텍사스 대학교 지구물리학연구소의 숀 굴릭(Sean Gulick) 박사는 "대량멸종과 이후 팔레오기(신생대 제3기)의 생물학적 회복을 불러온 환경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문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충돌 이후 불덩어리들이 지구 곳곳에 쏟아졌고, 지구는 소행성 파편으로 뒤덮여 차갑고 어두운 세계로 변했다. 멕시코 과학 아카데미 회장이자 이번 임무를 총괄하는 하이메 우루티아(Jaime Urrutia) 박사는 "태양 복사열이 차단되면서 광합성이 멈췄고, 연쇄적인 멸종이 시작됐다. 수개월 후 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바다의 화학 성분이 변해 더욱 산성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소행성만이 원인은 아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소행성 충돌이 공룡 멸종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보지만, 이 충돌이 당시 생존 종의 75%를 소멸시켰고 지구 진화에 거대한 격변을 가져왔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칙슐루브 크레이터는 1970년대 멕시코 석유공사(Pemex)의 자원 탐사 과정에서 발견된, 가장 최근의 것이자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충돌 크레이터다. 역사적 중요성 외에도 이곳에는 신비로운 특징이 하나 있다. 크레이터 중심부 근처에는 높이 500m, 반경 약 30km에 달하는 원형 산맥이 솟아 있는데, 이는 '피크 링(ring of peaks)'이라 불린다.
굴릭 박사는 "피크 링 내부의 암석은 너무 심하게 부서져 있어, 매우 높은 온도의 유체가 암석 틈새로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 이 관찰을 통해 이곳이 미생물 생명체에게 유리한 환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끄러운 칙슐루브 크레이터 탐사 현장
산맥의 한 봉우리 꼭대기에는 '마이틀(Myrtle)' 시추선이 고정되어 있다. 국제해양탐사프로그램(IODP)과 국제대륙시추프로그램(ICDP) 소속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밤낮없이 작업을 이어간다.
중장비의 요란한 소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제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연구원들은 몸짓과 외침으로 서로 소통한다. 두 대의 크레인이 선박에서 사람과 장비를 오가며 실어 나르는 동안, 시추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강력한 드릴은 수백만 년 전에 형성된 암석층을 1.5km 깊이까지 뚫어 들어가고, 길이 1km에 달하는 튜브가 시료를 끌어올린다.
임무는 6월 초에 종료될 예정이다. 수집·분석된 암석은 독일 브레멘으로 운송되어, 과학자들의 최종 연구 보고서 작성에 활용된다.
그러나 멕시코만의 신비를 향한 과학자들의 열정이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유카탄의 어민들은 시추 소음이 농어와 참게 등 어종들을 이 해역에서 쫓아내고 있다며 불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