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도시 메기도(텔 메기도)에서 3600년 된 항아리 세 개가 발굴되었고, 그 안에서 놀랍게도 바닐라의 흔적이 검출되었다. 지금까지 바닐라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알려져 왔으며, 그곳에서 출발해 구세계로 퍼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발견은 향신료 역사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바닐라 꼬투리.
무덤 속에서 풀려난 고대의 비밀
이스라엘 북부, 이즈레엘 평원(구 에스드렐론 평원)을 내려다보는 메기도 유적*에서 발견된 부장품 항아리들은 아주 오래된 비밀을 풀어냈다. 연구팀이 항아리에 남은 잔여물을 분석한 결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분이 확인된 것이다. 바로 바닐라였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이 향신료의 기원을 멕시코로 확정해 왔다.
"레반트 지역에서 3600년 전에 이런 발견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발굴을 지휘한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이렇게 말했다. 이 발견은 바닐라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들 만한 것이다.
이스라엘 북부 메기도 유적의 항공 사진. © 메기도 고고학 탐사단
황금 목걸이와 함께 묻힌 '50호 무덤'
2016년,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약 7000년간 사람이 거주해 온 광활한 도시 메기도(면적 약 6헥타르)에서 신분 높은 가족의 중요한 무덤(50호분)을 발굴했다. 성경 요한계시록이 종말의 전쟁 '아마겟돈'이 벌어질 장소로 언급하는 바로 그곳이다. 기원전 1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아치형 석실 안에는 9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3명은 황금 토르크(목걸이)를 포함한 귀중한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이 항아리들도 함께 놓여 있었다.
바닐라 흔적이 발견된 50호 무덤 출토 항아리. © 멜리사 크래딕 / 메기도
과학 분석이 드러낸 바닐라의 흔적
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법으로 진행된 분석 결과, 올리브유의 흔적 외에도 바닐린(vanillin)과 4-히드록시벤즈알데히드(4-hydroxybenzaldehyde), 즉 바닐라의 주요 화학 성분 두 가지가 검출되었다. 이는 이 식물의 역사에 대한 기존 통념을 뒤흔드는 결과다. 식물 잔존물을 연구하는 고고식물학자들은 그동안 바닐라의 기원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았고, 16세기 대항해시대에 스페인인들이 이를 구세계에 들여온 것으로 여겨왔다.
바닐라는 열대성 덩굴란 난초가 만들어내는 꼬투리로, 전 세계에 약 100여 종이 분포한다. 아메리카 밖에서도 그보다 몇 세기 앞서 사람들이 다른 종에서 이러한 향료 물질을 추출했을 가능성이 이제 충분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덩굴성 바닐라 난초. © Viard M. / Horizon Features / Leemage / AFP
새로운 가설: 아메리카가 아닌 곳에서 온 바닐라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자 버네사 리나레스(Vanessa Linarès)는 2018년 11월 12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미국 동양연구학회(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ASOR)'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가설을 발표했다. 그녀는 메기도에서 검출된 바닐라의 공급원이 될 수 있는 세 종을 제시했다. 동아프리카산 V. polylepis Summerh., 인도산 V. albida Blume, 그리고 동남아시아산 V. undiflora J.J.Sm.이 그것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 향신료의 한 품종, 혹은 바닐린 향이 배어 있는 기름이 카라반과 교역로를 통해 메기도까지 전해졌을 수 있다. 즉, 아시리아나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수백 년 전부터 장거리 교류가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동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곳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리나레스는 설명했다. 그 경로는 아마도 메소포타미아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바닐라가 얼마나 귀한 향신료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나안 엘리트 계층의 무덤에서 이루어진 이번 발견이다. 당시 바닐라는 의례용으로, 혹은 방부·보존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메기도 유적은 기원전 6천 년기부터 페르시아 시대인 기원전 5세기에 완전히 버려질 때까지 끊임없이 사람이 거주해 온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