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시대와 중세의 포도 씨앗에 대한 DNA 분석 결과, 포도 품종은 지난 2천 년 동안 놀랄 만큼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프랑스 에로(Hérault) 주 투르브(Tourbes)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된 1세기 포도 씨앗은 오늘날의 피노(Pinot)와 사바냉(Savagnin) 품종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확인되었습니다.
포도 재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의 유전학자들,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INRA) 연구진, 그리고 고고식물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이 철기 시대, 로마 시대, 중세의 9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출토된 포도 씨앗의 DNA를 현대 포도 품종과 비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긴밀한 유전적 연관성이 드러났으며, 이는 와인의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우수한 포도 품종을 번식시키는 기법이 최소 2천 년 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입증합니다. 이 연구는 학술지 네이처 플랜츠(Nature Plants) 최신호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서기 1세기 대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지중해 연안에서 재배되던 91개의 포도 품종을 기록했지만, 라틴어 명칭만으로는 이들을 오늘날의 품종과 연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전학이 전례 없는 정밀함으로 그 연결고리를 찾아냈습니다.
몽펠리에 대학 진화과학연구소 소속 CNRS 연구원 로랑 부비(Laurent Bouby)는 말합니다.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가 조사하는 유적지에서는 포도 씨앗이 아주 자주 발견되지만, 대부분 탄화된 상태입니다. 더 드물게는 우물이나 하수구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이 씨앗들은 수백 년간 물속에 잠겨 있으면서 유전 정보의 일부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28개의 고대 포도 씨앗에 대한 분석이 가능했습니다.
대를 이어 같은 품종을 지켜 온 포도 농부들
고대 유물을 현대의 포도나무와 비교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입니다. 초고처리량 시퀀싱 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부족했고, 현대 품종들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현재 783개의 현대 품종이 시퀀싱되어 상당한 규모의 표본을 이루고 있으며, 세계 최대 컬렉션인 프랑스 세트(Sète) 인근 바살(Vassal) 영지에는 무려 4천여 개의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법의학 수사 방식과 유사한 유전자 비교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1100년대 프랑스 오를레앙(Orléans) 근교의 중세 교회 유적지에서 출토된 씨앗과 오늘날 사바냉 블랑(Savagnin Blanc) 품종 사이의 완벽한 일치입니다. 사바냉 블랑은 쥐라(Jura) 지방의 명품 '옐로우 와인(vin jaune)' 생산에 쓰이는 품종이자, 중부 유럽에서는 트라미너(Traminer)로 알려진 품종입니다. 로랑 부비는 "이는 적어도 지난 900년 동안 기술의 변화와 기후 변수 등에도 불구하고 포도 농부들이 클론 번식을 통해 이 품종의 특성을 그대로 지켜 왔다는 의미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에로 주 투르브의 1세기 로마 유적지에서 수집된 씨앗들은 중세 사바냉과 직계 혈통임을 보여줌으로써 이 품종의 역사를 새로운 천 년 앞당겼습니다.
같은 품종으로 이어지는 2천 년 와인의 역사
모든 비교가 이처럼 극적인 결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가까운 친족 관계가 확인되었습니다. INRA 몽펠리에 지중해 식물 유전 개선·적응(Agap) 연구실의 유전학자 로베르토 바칠리에리(Roberto Bacilieri)는 설명합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는 '1촌 친족'으로, 부모-자식, 친형제 관계 등 여러 범주를 포함하며, 조상의 근칩 교배로 인해 부모와 조부모가 동일한 후손 사례까지 확장됩니다."
실제로 로마 시대의 여러 씨앗이 사부아(Savoie) 지방 품종인 몽듀즈 블랑(Mondeuse Blanche)과 긴밀한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몽듀즈 블랑은 코트디론(Côtes-du-Rhône)의 상징인 시라(Syrah), 그리고 부르고뉴 거의 모든 아펠라시옹의 기반이 되는 피노 누아(Pinot Noir)와 매우 가까운 품종입니다. 바칠리에리는 "지금까지 오늘날 포도 품종들의 조상은 아득한 과거 속에 묻혀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 흔적을 갖게 되었다"며 연구 성과를 환영했습니다.
또 하나의 성과는 고고학자들에게 과학적 확증의 의미를 갖습니다. 적어도 로마 시대부터 인간은 삽목이나 접목을 통해 최고의 포도 품종의 특성을 선별하고 유지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품종들은 오늘날 종묘업자들이 그러하듯 교역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600km 떨어진 랑그독(Languedoc)과 알자스(Alsace)에서 출토된, 같은 로마 시대의 두 샘플이 동일한 유전적 특징을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기 시대부터 이미 꺾꽂이나 삽목이 행해졌음을 시사하는 도구, 식물 유해, 재배 구덩이 흔적이 존재했지만, 이제 유전학적 증거까지 확보된 것입니다.
더 많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포도나무의 유전사(遺傳史)는 이제 막 일부가 밝혀진 단계이며, 더 많은 발견이 기대됩니다. 프랑스 국립연구청(ANR)의 지원을 받은 로랑 부비와 로베르토 바칠리에리는 툴루즈에 새로 설립된 분자인류학 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신석기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씨앗을 포함해 수백 개의 추가 씨앗을 시퀀싱하고, 포도나무의 '계보수(系譜樹)'를 더욱 정교하게 완성해 갈 계획입니다.
바칠리에리는 "이 연구는 현대 포도 재배에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와 문화를 제공할 것"이라며, "세상은 변하지만 와인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