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칠면조 깃털 1만 1,500개와 밧줄 180미터…800년 된 아메리카 원주민 담요의 비밀

칠면조 깃털 1만 1,500개, 밧줄 180미터로 완성된 800년 전 걸작

칠면조 깃털 1만 1,500개와 유카 섬유로 꼬아낸 180미터의 밧줄. 이 놀라운 재료들로 탄생한 것이 바로 약 800년 전 아메리카 원주민이 손으로 만든 담요다. 미국 연구진은 이 유물을 정밀 분석하여 수백 년 전 미국 남서부에서 칠면조 깃털 담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저널 오브 아케올로지컬 사이언스: 리포츠(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게재되었다.

이러한 깃털 담요는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갓 태어난 영아를 감싸거나 고인이 된 사람을 덮는 데 사용한 물품으로 알려져 있다.

칠면조 깃털 1만 1,500개와 밧줄 180미터…800년 된 아메리카 원주민 담요의 비밀

▲ 칠면조 깃털을 감아 만든 섬유 밧줄의 일부 모습

깃털 1만 1,500개, 칠면조 4~10마리 분량

이번 연구의 대상이 된 담요는 가로세로 99×108센티미터 크기로, 유타주 남동부에서 출토되었으며 오늘날 푸에블로 인디언의 조상들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석 결과, 이 담요에는 깃털 길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칠면조 4~10마리에서 얻은 약 1만 1,500개의 깃털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솎아낸 깃털은 총 180미터에 달하는 유카(yucca) 섬유 밧줄에 하나씩 감겨 담요의 뼈대를 이루었다.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에 따르면 이러한 담요는 주로 여성들이 만들었으며, 추위를 막는 겉옷이나 잠자리용 이불, 그리고 장례 시 시신을 덮는 포개 등으로 폭넓게 활용되었다. 워싱턴 주립 대학교 인류학 조교수이자 연구 공동 저자인 섀넌 투싱햄(Shannon Tushingham)은 "푸에블로의 선조 농경 사회가 번성하던 시기에는 어느 시점에든 수천 개의 깃털 담요가 사용되고 있었을 것"이라며 "영유아부터 어른까지 선조 푸에블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씩 소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토끼 가죽으로 만든 담요보다 내구성이 뛰어나 여러 해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다만 섬유 유물 특성상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담요는 많지 않다. 극소수의 유물은 극한의 한랭·건조 환경에서 보관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원주민에게 칠면조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연구진은 담요 생산의 경제적 측면도 함께 살폈다. 깃털의 지속 가능한 공급은 털갈이 시기와 무관하게 살아있는 새에서 깃털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죽은 동물에서 채취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 빈도는 상대적으로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담요에 남은 혈흔 흔적을 분석하면 해당 깃털이 성숙한 뒤 자연스럽게 수집된 것인지, 아니면 살아있는(또는 죽은) 새에서 미리 뽑아 얻은 것인지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칠면조가 처음부터 식량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1200년대 무렵 과도한 사냥으로 야생 동물이 고갈되기 전까지 칠면조는 먹잇감이 아닌 깃털 공급원으로 사육되었다. 실제 고고학 발굴에서는 성숙한 칠면조의 완전한 골격이 의도적으로 매장된 채 발견되었는데, 이는 어떤 형태의 의식이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이후 식용 목적의 사육이 확대된 이후에도 이들의 유해는 매장되었다.

연구의 제1저자인 윌리엄 라이프(William Lipe) 교수는 "우리가 분석한 담요가 만들어진 서기 1200년대 초에는 깃털을 제공한 칠면조들이 가정 안에서 중요한 존재로 대우받았으며, 완전한 형태로 매장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칠면조와 그 깃털에 대한 경외심은 오늘날에도 푸에블로의 전통 춤과 의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칠면조는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 가운데 하나로, 서기 1500년에서 1600년 사이 유럽인들이 도래하고 양과 닭이 들어오기 전까지 푸에블로 부족에게 지대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