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용 새를 대규모로 사육했을까?

지구화학자와 고고학자들이 후기 이집트 시대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에서 천문학적인 숫자로 발견된 조류 미라를 분석했습니다. 그 목적은 이 동물들이 고양이처럼 집중적으로 사육되었는지, 아니면 자연 환경에서 대량으로 포획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용 새를 대규모로 사육했을까?

프랑스 리옹 콩플루앙스 박물관(Musée des Confluences)에서 연구자 마리 랑글랭(Marie Linglin)이 미라 처리된 말똥가리 표본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입니다.

수천만 점의 조류 미라, 출처는?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사육하듯 의례용으로 새를 길렀을까요? 나일 계곡의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따오기와 맹금류 미라의 방대한 수량—작은 미라만 수천만 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은 오랫동안 이들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낳았습니다. 하늘의 신 호루스(Horus), 태양신 라(Re), 지혜의 신 토트(Thoth)에게 바치는 제물로 희생되어 안치된 이 조류들은 그 규모만큼이나 후기 이집트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후기 이집트 시대는 기원전 7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두 가지 가설이 병존해 왔지만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는 이 새들이 봉헌용으로 특별히 사육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환경에서 대량으로 포획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가려내는 일은 로마 지배 아래 쇠퇴하기 이전 고대 이집트 사회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합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클로드 베르나르 리옹 1대학교(Université Claude Bernard Lyon 1), 프랑스 박물관복원연구센터(C2RMF) 소속 연구진은 리옹 콩플루앙스 박물관에 소장된 따오기와 맹금류 미라 20점에서 깃털·뼈·방부 처리용 아포지 파편을 채취해 분석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2020년 9월 22일 국제 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이 새들은 실제로 야생이었습니다.

먹이가 남긴 동위원소 흔적

미라에 담긴 비밀을 읽어내기 위해 리옹 지질연구소(LGL-TPE, 지구·행성·환경)의 지구화학자 로망 아미오(Romain Amiot)와 인류학 박사과정생 마리 랑글랭은 단순한 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만약 새들이 사육되었다면, 반드시 당시 사람들을 위해 생산되었거나 그와 유래를 같이 하는 먹이를 섭취했어야 하고, 나일 계곡 고유의 동위원소 서명을 지닌 물을 마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이들의 식성 변동 폭은 사육주의 그것과 같거나 더 작아야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용 새를 대규모로 사육했을까?

리옹 콩플루앙스 박물관 이집트학 컬렉션의 미라 처리된 성스러운 따오기. 사진 출처: 로망 아미오/LGL-TPE/CNRS

두 연구자는 성스러운 따오기와 말똥가리 유해에서 채취한 미세 파편을 파리의 미라 조사·연구 센터로 보냈습니다. 산소, 탄소, 질소, 황, 스트론튬에 대한 동위원소 분석—환경 고고학에서 널리 활용되는 방법—을 통해 이 조류들의 먹이 이력을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 새들은 고대 이집트인들보다 훨씬 큰 동위원소 변동성을 보였으며, ‘외부 기원’의 서명도 함께 확인되었습니다.

“이 새들은 이 광활한 계곡을 자유롭게 누비며 계절에 따라 나일 강 상류 지역까지 올라갔습니다.”라고 아미오는 프랑스 과학지 Sciences et Avenir에 설명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곧바로 명확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사냥당했다는 것입니다.”

수 세기에 걸친 생태계 압력

2019년 고생물유전학자 샐리 와세프(Sally Wasef)의 연구는 미라 따오기에서 야생종 특유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우리 결과는 샐리 와세프의 연구와 매우 잘 부합합니다.”라고 아미오는 덧붙였습니다. 드물기는 하나 일부 부조와 파피루스도 이러한 사냥 관행을 증언하며, 화살이 아니라 대형 그물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테베 네크로폴리스의 나크트(Nakht) 무덤 벽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미라가 된 조류 상당수가 목이 꺾인 상태였는데, 이는 그물 사냥의 특징과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어진 이러한 집중적 사냥은 오늘날 관찰되는 조류 개체수 감소보다 훨씬 이전부터 야생 조류 개체군에 막대한 생태적 압력을 가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야생 따오기 개체수 감소가 본격화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대체로 어떻게 이들은 그토록 거대한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고 적응할 수 있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