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난성 링징(靈井) 유적에서 발견된 이 새 조각상은 겨우 몇 밀리미터 높이에 불과하지만, 동아시아에서 구상 조각이 등장한 시기를 무려 8천 년 이상이나 앞당겼습니다. 나아가 왜 유럽에서는 3만5천~4만 년 전이라는 훨씬 이른 시기에 조형 예술이 꽃피웠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링징 야외 유적에서 나온 이 아주 작은 새 조각은 크기가 불과 2cm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사진 속은 원본을 본떠 만든 3D 모형입니다.
매립 직전까지 갔던 보물
뼈 조각 같은 이 작은 새는 거의 건설 잔해 자루 속에 묻혀 버려질 뻔했습니다. 고고학 발굴 과정이 아니라 우물을 파던 도중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산둥대학의 고고학자·고생물학자 리잔양(Zhanyang Li)은 선사시대 유적에서 직접 채취한 흙을 체로 걸러보는 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허난성 링징 유적은 이미 수많은 보물을 안겨 준 곳으로, 2007년과 2008년에는 호수 퇴적층에서 10만5천~12만5천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두 성인 인간 두개골 파편이 회수된 바 있습니다.
단순한 뼈 조각? 아니, 미니어처 예술
참새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이 조각상은 '겨우' 1만3천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부터 호주에 이르는 광활한 동아시아권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상 조각입니다. 이번 성과는 2020년 6월 10일자 국제 학술지 PLOS ONE에 발표되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이 작품의 계보를 찾으려면 시베리아 서부의 말타(Malta) 구석기 유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1만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상 조각 여러 점이 출토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타가 링징에서 2천km 넘게 떨어져 있어 두 발견을 연결하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프랑스 보르도대학교 CNRS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문화·환경·인류학' 연구실의 고고학자이자 이번 연구의 주저자인 프란체스코 데리코(Francesco d'Errico)는 신중하게 말합니다.

조각상의 나이보다 연구자들을 더욱 매료시킨 것은 제작에 들어간 치밀함이었습니다. "이 새에게는 마모 흔적, 깎기, 긁기, 새기기 등 무려 68개의 미세 절면이 확인되며, 이는 자연산 물체가 아니라 명백한 인공 창작물임을 입증한다"고 데리코는 설명했습니다. "뼈는 또한 의도적으로 불에 태워 이 갈색 색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꼬리는 몸통에 비해 일부러 과감하게 크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받침대 위에 올렸을 때 앞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조각가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물건치고는 상당한 노력이다."
태운 뼈로 조각된 이 작은 새는 말린 콩알만 한 크기입니다. 이 때문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큰 제약이 따랐습니다. 이 효과적이지만 침습적인 기법은 작품에서 1×1cm 크기의 시료를 채취해야 하는데, 그것은 새의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였기 때문입니다. "직접 측정은 불가능했다. 대신 퇴적층에서 함께 발견된 다른 숯화된 뼈 조각들에 대한 탄소-14 분석 결과에 의존해야 했다"고 데리코는 밝힙니다. 그는 또한 공초점 현미경(confocal microscopy), 미세 컴퓨터 단층촬영(microtomography) 등 첨단 분석 기법으로 이 물체를 면밀히 검증했습니다.
빠져 있는 고리, 남은 미스터리
크기는 작지만 이 새 조각은 구석기 예술 연구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말타 유적을 제외하면, 동아시아에서 조각과 동물 표현의 기원을 8,500년이나 앞당긴 셈입니다. 다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각상들과의 거대한 시간 공백을 메우지는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 호흘레펠스(Hohle Fels) 유적에서 출토된 매머드 상아의 '호흘레펠스의 비너스'와 사자 머리를 한 사람 형상을 들 수 있습니다. 비너스상은 최대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이 시기인 오리냐크 문화기는 최초의 현생 인류가 유럽에 도달한 때와 일치합니다.
그런데 중국 영토에서는 50만~60만 년 전의 화덕 흔적까지 확인되었음에도, 어째서 두 지역 사이 입체 조형 예술의 등장에는 거의 2만7천 년이라는 격차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선사학자 패트릭 파예(Patrick Paillet)는 "여전히 진정한 미스터리다"라고 답합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현재의 지식 수준에 근거해 추론할 뿐입니다. 아시아든 유럽이든 더 오래된 것이 발견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이 작은 새 조각이 아시아 조각의 기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고립된' 발견이라고 지적합니다.
데리코 역시 이 지역에서 더 오래된 조각이 발견되지 않은 데는 연구 방식 자체가 한몫했을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만약 모두 이 물체와 비슷한 크기였다면, 이전 발굴에서 종종 간과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실제로 이 조각상의 스케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닙니다. 프랑스 피레네대서양주의 부루이야(Bourrouilla) 동굴에서는 높이나 길이가 1.5cm를 넘지 않는 동물 조각들이 여러 점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약 1만4천~1만5천 년 전 마들렌 문화기로 연대가 책정된 이들은 후기 구석기 휴대 예술이 점차 소형화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후기 구석기에서 드문 새의 형상
그럼에도 한 가지 디테일이 파예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일부 새들은 고기, 깃털, 장식용 발톱을 얻기 위해 사냥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기 구석기 전반을 통틀어 새의 형상화는 매우 드물며, 벽화 예술을 포함해도 많아야 백 점 정도에 불과합니다." 왜 하필 새였을까요? 그리고 이토록 작은 물체는 대체 어떤 용도였을까요?
데리코는 여기서 추측만 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개인적으로는 휴대하기 위한 물건, 아마 주머니에 넣어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립된 물건이 아니라 다른 작은 물체들과 하나의 세트를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전체가 샤머니즘적 차원을 지녔을 수도 있다." 이 가설을 확인하려면 앞으로도 계속 흙을 체에 걸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