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인도양 레위니옹 섬 해발 700미터 고원 위에 자리한 이레 귀욤(Îlet à Guillaume) 형무소에서는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오늘날 이곳에서는 그들의 아픔 가득한 역사를 밝히기 위해 고고학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871년 제작된 스케치로, '이레트 귀욤과 뇌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150년 전의 슬픈 흔적
생드니(Saint-Denis)에서 도보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 레위니옹의 산악 지형에 익숙한 하이커라면 이끼로 덮인 낡은 돌담을 한 번쯤 마주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 돌담이 150년도 더 된 슬픈 과거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2008년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 이 유적은 한때 탈출한 노예들의 은신처로 방치되기도 했지만, 폐허가 된 지금도 어린아이조차 감옥살이를 피하지 못했던 혹독한 시대를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1864년부터 1879년까지 이레 귀욤 형무소에는 3,000명이 넘는 어린이가 수감되었습니다. 성령회(Congrégation du Saint-Esprit, 스피리탕) 선교사들의 통치 아래, 이 아이들은 당시의 말로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했습니다. 길게는 15년 동안 그들의 여린 팔은 돌을 깨고 옮겼고, 건물을 지었으며, 밭을 갈고 가축을 돌보았습니다. 대장간 일과 목공, 그리고 기도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습니다.
부지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석벽 중 하나인 임시 예배당의 벽체. 출처: Inrap
'자연이 만든' 감옥
2020년 10월, 레위니옹 데파르트망이 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정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팀이 현장 발굴에 나섰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이미 여러 문헌에서 다뤄졌지만, 유적 자체에 대한 고고학 연구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연구팀은 형무소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두 손으로 이 시설을 지어 올렸는지를 규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건물별 연대 편성, 벽체와 지층 전체의 사진측량(포토그래메트리), 고고식물학 분석 등이 진행되면서 전문가들은 잊혀진 아이들의 소모적인 일상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서쪽에서 바라본 이레의 전경. 앞쪽 숲이 우거진 고원은 브라 귀욤(Bras Guillaume) 계곡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절벽이 '성벽' 역할을 하며 형무소를 자연스럽게 고립시켰다. 출처: Inrap
이곳은 철창도 담장도 필요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생드니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파인 통행로가 너무나 험난했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최연소 수감자는 단 7살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겨우 십 대의 어린이였습니다. 이들은 거의 모두 해방된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으로, 사소한 절도, 반항 행동, 심지어 부랑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깎아지른 절벽 위의 정글로 끌려왔습니다. 매일 밤 지붕 아래에서 잘 곳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유죄가 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때로는 한두 명의 백인 아이도 이들과 합류했는데, 아마 '구제 불능'으로 판단된 탓이겠지요.
침묵과 망각에 처하다
출소하여 어른이 된 이들은, 바로 성인 교도소로 향하지 않은 경우에도 이레 귀욤에서의 경험을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실태를 전해주는 것은 성령회가 남긴 기록뿐입니다. 기록 속에는 삽을 든 채 일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가슴 먹먹한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신부들이 만든 생활 환경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처벌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학대가 얼마나 만연했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외딴 곳에 자리한 작은 묘지가 그 사실을 대신 증언합니다. 이름도 없는 열두 개 남짓의 무덤. 돌무더기만이 그 아래 땅속에 몸이 잠들어 있음을 알려줄 뿐입니다. 고된 노동의 돌이자, 마지막 안식처의 돌이었던 셈입니다.
1868년, 이삭(Isaac) 수사의 감독 아래 도로 공사에 동원된 아이들의 모습. 출처: 성령회 소장 컬렉션
프랑스 수용 역사에서 '아동 형무소(bagnes d'enfants)'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입니다. 미성년 수감자의 교육에 관한 1850년 8월 5일자 법률에 따라 설립된 이 시설들은, 무엇보다 어린아이들이 일반 교도소로 보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1880년에 설립된 벨일앙메르(Belle-Île-en-Mer) 공립 해양·농업 형무소입니다. 1886년 에로(Hérault) 주에 세워진 아니안(Aniane) 형무소 역시 프랑스에서 가장 엄격하기로 악명이 높았으며, 1937년에야 문을 닫았습니다. 이레 귀욤 농업 형무소는 레위니옹에 들어선 유일한 아동 형무소로, 1879년에 완전히 폐쇄되었습니다. 당시 세속화되고 공화국 체제로 전환한 레위니옹 식민지는 더 이상 성직자가 이런 시설들을 운영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