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山西)성 홍동현에서 발견된 청나라(1644~1912) 시대 묘지의 유골 분석을 통해, 여성들에게 약 천 년간 고통을 강요했던 '전족(纏足)' 풍습의 생생한 단면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여성의 신체를 훼손한 관행으로, 무려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전족한 발에 신우던 '금련(金蓮)' 신발은 길이가 불과 7.5cm를 넘지 않아야 했습니다. 10세기부터 20세기까지 중국에서 행해진 이 극단적인 풍습이 남긴 흔적입니다.
'버드나무처럼 걷다', 귀족의 미의 기준이 되다
수 세기 동안 중국에서 여성의 고통에는 하나의 절대적 기준이 있었습니다. "버드나무처럼 아련하게 걷기 위해서는" 발이 자라지 못하도록 묶어야만 했습니다. 한(漢) 왕조(기원전 206~서기 220년) 시대 강소(江蘇) 지방에서 일부 사례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 참혹한 관행은 10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나 귀족 사회의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먼저 당(唐, 618~907)과 송(宋, 960~1279) 궁정에 받아들여졌고, 명(明, 1368~1644)과 청(淸, 1644~1912) 시대를 거치며 사회 모든 계층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따라서 한족(漢族) 가정에서는 딸의 사회적 미래, 즉 더 부유한 상류층과의 혼인을 보장하기 위해 어린 소녀들에게 온갖 고통을 가했습니다. 정점에 오르 '황금 연꽃(Golden Lotus)'이 되려면 발 길이가 7.5cm를 넘지 않아야 했고, 10cm면 '은련(銀蓮, Silver Lotus)', 12cm면 '철련(鐵蓮, Iron Lotus)'으로 불렸습니다.
전족된 발(왼쪽)과 자연스러운 발(오른쪽)의 해부학적 구조 비교. ©Qian Wang et al.전족 여성 74명의 유골 확인
중국 북부 산시성 홍동현에서 발견된 청나라 시대 묘지에 대한 최근 연구가 학술지 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에 게재되었습니다. 논문 공동 저자인 미국 텍사스 A&M 대학의 첸 왕(Qian Wang) 연구원은 "시펑부(Xifengbu) 묘지에서 발굴된 93구의 유골 중 74명의 여성이 전족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들은 13세에서 60세 사이로, 수 세기 동안 이 묘지에 조상을 안장해 온 류(Liu)씨와 자오(Zhao)씨 두 가문 출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산시성 시펑부 청나라 묘지에서 발견된 전족 여성의 매장 모습. ©Qian Wang et al.과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친 비교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를 통해 역사 기록이 전하던 내용, 즉 전족 여성이 자연스러운 발을 가진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더 높은 지위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흥미롭게도 청나라 시대에 일부 발을 묶지 않은 여성들도 전족 여성과 같은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묘비명과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의 규모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북부 산시성 시펑부 한족 묘지. 빨간색은 전족 여성의 무덤, 파란색은 발이 변형되지 않은 여성의 무덤이다. 점선은 류씨와 자오씨 가문의 묘역을 표시한다. ©Qian Wang et al.괴사해 떨어진 발가락
유골 발 부위 검토는 푸젠(福建), 산시(陝西), 산둥(山東), 윈난(雲南) 네 개 성에 흩어진 여러 묘지 출신 여성 241명의 X-ray 이미지 분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두 가지 주요 변형 유형이 확인되었습니다. 하나는 뒤꿈치가 두툼해지고 두 번째와 다섯 번째 발가락이 발바닥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 발 길이를 줄이는 '종골족(Talipes calcaneus)'으로, 시펑부 묘지 기록 사례의 80%를 차지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발이 계단 모양으로 변형되는 '첨족(Talipes equinus)'입니다. 각 단계마다 발은 점점 더 작은 뾰족한 신발에 넣어졌습니다.
4~8세 어린 소녀들에게 시작된 이 혹독한 고문은 뼈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막았고, 발이 자랄 때마다 더 꽉 조인 붕대는 끔찍한 고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혈액 공급이 차단될 만큼 눌린 발가락이 괴사해 떨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으며, 이러한 상처는 10%의 경우 치명적인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발(a), 종골족이 된 붕대 발(b), 첨족(c)의 비교 도식. ©Qian Wang et al.미모와 성적 매력의 상징, 그리고 통제의 도구
당시 사람들의 믿음에 따르면 이런 고난은 쾌락과 성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작고 위축된 발로 걷는 것이 남성에게 에로틱한 효과를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10세기의 전설에 따르면 여성의 발은 연꽃 춤꾼 요낭(Yao Niang)의 발처럼 "가늘고, 작고, 붕대로 감겨 있고, 향기롭고, 좌우 대칭"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 역사가 푸단 가오싱(Fudan Gaoxing)의 언급입니다. 그러나 한족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이 풍습은 무엇보다 깊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19세기 말 중국에서 촬영된 '황금 연꽃'을 가진 여성. ©AFP천 년 풍습의 종언
17세기 만주족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주기적인 금지 시도는 오랫동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912년에야 중화민국이 이 관행을 금지했고, 실질적인 근절은 1940년대에 이루어졌습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은 이 풍습을 인격을 모욕하는 관행으로 규정하고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이후 전족 여성들은 따돌림까지 겪어야 했는데, 거의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들일 보내진 여성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이었습니다. 2015년에도 윈난성 농촌 지역에는 전족을 당한 할머니들이 여럿 살아 있었으며, 일부는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족 풍습은 1949년 완전히 근절되었지만, 2015년에도 윈난성 농촌 지역에는 이 전통의 피해자인 노할머니들이 살아 있었다. ©He Huan / Imaginechina/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