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집트 아트리비스에서 그리스로마 시대 최대 규모의 오스트라카 출토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소하그(Sohag) 지역에서 고대 문자가 새겨진 도자기 파편, 이른바 '오스트라카(ostraca)' 1만 5천 점 이상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유물군을 발굴했습니다. 이는 이집트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방대한 규모의 그리스로마 시대 유적 출토 사례입니다.

데모틱 문자로 기록된 공물 기록, '새들의 알파벳'이라 불리는 히에라틱 문자 텍스트, 수학 연습 문제까지… 수천 개의 오스트라카가 상이집트(Upper Egypt)의 아트리비스(Athribis)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발견입니다"라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 책임자 산드라 리퍼트(Sandra Lippert)는 설명합니다. 이집트 관광유적부가 최근 공개한 이 성과는 이집트에서 진행된 발굴 중 문자가 새겨진 도자기 파편이 가장 많이 출토된 사례 중 하나입니다. 금융 거래 내역, 편지 초안, 종교 성소와 관련된 공물 기록 등이 담겨 있습니다.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크리스티안 라이츠(Christian Leitz)가 이끄는 독일·이집트 합동 발굴단이 소하그 남서쪽 아트리비스의 알셰이크 하마다(Al-Sheikh Hamad) 유적지에서 수천 개의 오스트라카가 쌓여 있는 매립지를 발굴해낸 것입니다.

소하그 남서쪽에 위치한 아트리비스 유적. 출처: Athribis Project, Tübingen University
고대 이집트판 '포스트잇'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만이 유일한 기록 재료는 아니었습니다"라고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산드라 리퍼트는 말합니다. 이번 발견은 문헌에 언급된 오시리스 신전 부속 예배당의 흔적을 찾던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중단도 없이 이집트학자들은 토기, 암포라(양손잡이 항아리) 등 용기 파편 수백 점을 발굴해왔습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땅바닥에 수천 개씩 널려 있던 깨진 도자기 조각을 주워 현대의 '포스트잇'처럼 짧은 메모를 적는 매개체로 활용했습니다. 갈대를 잘라 만든 펜에 검은 잉크를 적셔 사용했으며, 때로는 숯불에 그을린 나무 끝을 그대로 필기 도구로 쓰기도 했습니다.

현지 여신에게 바치는 공물 기록 — 화폐, 포도주, 피마자유와 홍화유, 밀과 보리 — 데모틱 문자로 작성됨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후기, 기원전 1세기). 출처: Athribis Project, Tübingen University

현지 신화를 다룬 상형문자 비문의 부분 필사본으로, 아마도 학생이 연습하며 적은 것으로 추정됨 (로마 시대 초기, 서기 1~2세기). 출처: Athribis Project, Tübingen University
"주로 데모틱 문자로 된 텍스트를 발견했지만, 히에라틱 문자, 상형문자(히에로그리프), 콥트어, 그리스어로 된 것도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부터 그리스어는 로마 통치기는 물론, 640년 이집트가 무슬림에게 정복된 이후에도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행정 업무를 수행하려면 그리스어 구사 능력이 필수 요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문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중세 시대까지 아트리비스 지역에서 이루어진 일상 활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작은 낙서들과 함께, 아마도 학생들이 적은 것으로 보이는 연습 문제 줄글도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서기 2세기까지 운영된 아트리비스 신전 학교의 학생들로 추정됩니다.

아이의 낙서: 위에는 히마티온(그리스식 망토)을 두른 두 인물이, 아래에는 옷차림(몸통 가리개와 허리 천), 홀과 자세가 이집트 부조 속 신적 혹은 왕실 인물을 연상시키는 한 사람이 그려져 있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말기 또는 로마 시대 초기, 기원전 1세기~서기 2세기). 출처: Athribis Project, Tübingen University
"이 파편들은 매립지에 버려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오스트라카들은 왜 한곳에 모이게 되었을까요? "언론에서 읽었을 수 있는 '은닉처'가 아닙니다"라고 산드라 리퍼트는 강조합니다. "이 도자기 파편들은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농경 작업 과정에서 버려진 것으로, 해당 매립지 중 40m×20m 규모가 이미 정리되었습니다!" 당시 최초의 댐 건설로 나일강의 충적토 공급이 끊기자, 농부들은 고대 건축물을 이루던 천 년 묵은 실트 벽돌을 폐허에서 회수해 밭을 비옥하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건축물 해체가 진행되는 동안 농부들은 마주친 수천 개의 오스트라카를 계속 버렸고, 그 결과 인위적으로 거대한 매립지가 형성된 것입니다.
아트리비스 유적지의 거대한 오스트라카 매립지. 출처: Project Athribis, Tübingen University이렇게 다양한 문자와 언어로 기록된 유물을 연구하기 위해 국제 공동 연구단이 구성되어 약 10명의 전문가가 협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서고고학·문헌학 연구소(AOROC, UMR 8546)와 CNRS 고문헌연구소(IRHT) 소속 연구자들, 그리고 스페인과 미국의 과학자들도 포함됩니다. 수 세기에 걸친 고대 역사를 아우르는 이 연구에는 발굴과 해독 작업을 모두 감안할 때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매주 500~600점의 오스트라카가 땅속에서 추가로 발굴되고 있습니다!
*오스트라콘(ostracon): 문자나 그림을 새긴 도자기 파편. 복수형은 '오스트라카(ostr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