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에서 발견된 두 기념비적 고분은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기원한 얌나야 문화 특유의 4개 매장실을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 유목민 집단의 확장을 증명하는 가장 서쪽에 있는 흔적입니다.

세르비아의 성스러운 고분에서 발견된 얌나야 문화 남성의 매장 재구성 모습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폴란드와 세르비아 공동 연구팀이 세르비아에서 수행한 두 고분 발굴 조사는 약 5,000년 전의 매장지를 밝혀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귀중한 발견을 공표하기 전 유전자 분석 결과를 기다렸고, 그 결과 동유럽 출신 유목민인 얌나야족의 독특한 의식에 따라 매장된 남성들의 초원 기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고분들은 그들의 이주 흔적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것입니다.
두 단계에 걸쳐 축조된 고분
샤이카슈(Šajkaš)와 자발(Žabalj)의 두 고분은 세르비아 북부 보이보디나 지방, 티사 강이 다뉴브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 인근 평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너비 40m, 높이 3~4m에 달하는 이 고분들은 기복이 거의 없는 이 지역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며, 이곳은 유라시아 대초원의 서쪽 경계에 해당합니다.
원래 이 고분들의 규모는 더 작았는데, 두 단계에 걸쳐 건축되었고 각각 두 개의 매장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첫 고인들이 안장된 시기는 기원전 3000~2900년경으로, 당시 직경은 약 20m, 높이는 2m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100~200년이 지난 후에야 높이와 너비를 확장하여 두 번째 매장을 수용하게 됩니다.
강에 가장 가까운 자발 유적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원래 고분의 높이에 해당하는 흙층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탄 파편과 현대에 판 일곱 개의 참호, 작은 화덕 흔적도 함께 발견했습니다. 이는 1944년 헝가리군과 독일군이 구축한 옛 방어선의 잔재로, 고분은 이 방어 체계에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이 장벽은 소련 붉은 군대가 티사 강을 도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발굴 조사 중인 자발 고분의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방어선의 참호가 보인다 © Piotr Włodarczak / PAP
나무로 지어진 매장실
각 고분에는 나무로 지어진 두 개의 매장실이 있었습니다. 직사각형 형태의 묘구는 지름 약 5cm의 작은 말뚝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고고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묘구에서 8개, 가장 최근의 것에서 12개를 확인했습니다. 뼈는 매장실 바닥에 직접 놓인 직사각형 자리 위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자발 고분의 가장 오래된 묘구에서는 한 남성 개체의 뒤섞이고 불완전한 유해가 발견된 반면, 횡단 빔 23개로 구성된 구조물로 덮인 가장 최근의 묘구에서는 반듯이 누워 다리를 오른쪽으로 굽힌 채 안치된 남성의 골격이 온전하게 출토되었습니다. 고인들은 모두 40대였습니다.

자발 고분에서 가장 최근에 조성된 매장실 © Piotr Włodarczak / PAP
주요 단서가 된 붉은 석호
매장실에는 어떠한 부장품도, 눈에 띄는 물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굴 총괄 중 한 명인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고고학·민족학연구소(IAE PAN)의 피오트르 보다르차크(Piotr Włodarczak) 박사는 부장품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자들에게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은 자리와 일부 뼈에 남은 붉은 색조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폴란드 통신사에 "이 붉은 착색은 고인의 시신에 석호(오크러)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노란빛~주황색을 띠는 천연 안료인 석호는 점과 적철광(산화철)이 혼합될 경우 붉은색을 냅니다. 한때 신성한 색으로 여겨졌던 이 색소는 장례 의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무덤 중 하나의 재구성 모습. 남성은 반듯이 누워 무릎을 굽히고 왼손을 아랫배에 올렸으며, 얼굴 윗부분에는 붉은 석호가 칠해져 있다 © Michał Podsiadło / PAP
동유럽에서 온 남성들
또 하나의 단서는 이 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큰 뼈의 크기였습니다. 당시 보이보디나에 거주하던 남성들의 평균 신장은 약 1.60m였지만, 무덤에서 발견된 뼈는 신장 1.80m를 넘는 남성의 것이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매장된 남성들이 분명 타지 출신임을 시사하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합니다. 웅장한 고분의 축조, 장례 의식에서의 석호 사용, 그리고 고인의 큰 체구는 이 남성들이 동유럽 초원에 주로 거주하던 부족, 즉 얌나야족에 속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 증거들이 서로 부합했음에도 연구진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 결과를 기다리기를 택했습니다. DNA 분석 결과 고인들이 스스로 동유럽 출신이거나, 해당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후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뼈의 동위원소 분석은 그들의 식생활이 고기 섭취에 기반했음을 보여주며, 이는 목축 활동을 시사합니다.
얌나야족의 장례 문화
기원전 4000년대와 3000년대가 교차하는 시기, 유럽은 폰토스-카스피 스텝이라 불리는 광대한 지역에서 몰려온 유목민들의 대거 유입을 겪었습니다. 이 지역은 흑해 연안부터 카스피해 북부까지 뻗어 있으며,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남부의 대초원을 포함합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목민들이 남긴 흔적을 얌나야 문화, 즉 '움무덤(pit grave) 문화'와 연결 짓습니다.
우랄산맥 부근, 스텝의 동쪽 절반이자 폰토스 지역에서 기원한 얌나야족은 '쿠르간(kurgan)'이라 불리는 고분에 그들의 죽은 이를 안장했습니다. 서쪽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보다 정착적인 생활 방식을 채택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숭배 관습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 초기 국가 형태의 중심지가 등장하면서, 그들은 특히 장례 관행에서 엘리트 계층을 구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주의 끝까지 지속된 장례 의식
고분은 대개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위해 세워졌으며, 매장실에서 흔히 발견되는 무기, 장신구, 장식 그릇 같은 화려한 부장품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샤이카슈와 자발의 두 고분에서는 이런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매장된 남성들이 적절한 예우를 받았음에도 엘리트 계층에는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보이보디나에서 발견된 다른 얌나야 문화 고분들이 강 반대편에 위치한다는 사실입니다. 티사 강 우안에 자리한 샤이카슈와 자발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서쪽의 얌나야 매장지입니다. 따라서 이 두 유적은 이 유목민 집단이 이주의 극한 지점에서도 자신들의 장례 의식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음을 생생하게 입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