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매장했다'고 표현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자 대다수는 일반적인 매장이 아니라 화장(소각)을 통해 유해가 처리되었습니다.
절대 다수는 화장으로 처리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 수용소와 강제 수용소에서는 가스실 등으로 살해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대규모 화장터와 야외 화장 장치에서 태웠습니다. 나치 당국은 범죄 증거 은폐와 시신 처리 속도라는 두 가지 목적 때문에 화장을 체계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집단 매장도 존재했다
다만 모든 희생자가 화장된 것은 아닙니다. 특히 홀로코스트 초기 단계였던 동유럽 지역에서는 무장친위대 특수작전부대(아인자츠그루펜)가 총살 형태로 대량 학살을 자행하면서, 바비야르 학살 사건처럼 희생자들이 집단 매장지(공동 묘지)에 묻히기도 했습니다.
증거 은폐 작업 '존더코만도 1005'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나치는 범죄 증거를 감추기 위해 이미 매장된 시신을 다시 꺼내 태우는 작업까지 진행했습니다. 이 잔혹한 은폐 작업에는 수용소 내 유대인 죄수들로 구성된 강제 노동 부대가 동원되었고, 상당수가 작업 후 살해당했습니다.
정리
결론적으로 히틀러와 나치 정권은 희생자들을 '매장'하기보다는 대부분 화장으로 유해를 없앴으며, 일부는 집단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오늘날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 각지의 추모 공간은 이러한 참상을 기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