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루이 8세 '사자왕'(1187~1226), 잉글랜드 왕관까지 제안받은 프랑스의 정복 군주

루이 8세  사자왕 (1187~1226), 잉글랜드 왕관까지 제안받은 프랑스의 정복 군주

루이 8세(Louis VIII le Lion, 1187~1226)는 프랑스 카페 왕조의 국왕으로, 필리프 2세(필리프 오귀스트)와 첫 번째 왕비 이자벨 드 에노(Isabelle de Hainaut)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훗날 아들의 유년기에 섭정으로서 왕국을 다스리게 되는 카스티야의 블랑슈(Blanche de Castile)와 결혼하여 왕가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존 왕과의 대결, 그리고 잉글랜드 왕관 제안

아버지 필리프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루이 8세는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1214년 라 로슈오무아(La Roche-aux-Moines) 전투에서 그는 잉글랜드의 존 왕(John Lackland, 무지왕)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프랑스 왕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을 뿐만 아니라, 존 왕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잉글랜드 귀족들이 루이에게 잉글랜드 왕관을 제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록 왕위 계승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는 그가 프랑스 밖에서도 인정받는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즉위와 플랜태저넷 세력 축소

1223년 아버지 필리프 2세의 뒤를 이어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한 루이 8세는 왕국 내 플랜태저넷(Plantagenêt) 가문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노르망디, 푸아투 등 잉글랜드 왕이 보유하던 여러 영토를 차례로 회수하며 프랑스 왕권을 한층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사자왕(le Lion)'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무장(武將)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알비 십자군과 갑작스러운 죽음

1226년, 루이 8세는 남프랑스의 카타르파를 진압하기 위한 제2차 알비 십자군을 직접 이끌었다. 이 원정에서 그는 론 강 유역의 요충지 아비뇽(Avignon)을 성공적으로 탈환하며 십자군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원정에서 돌아오던 길에 그는 이질(dysentery)에 걸려 급서하고 말았다. 향년 39세로, 짧지만 강렬한 통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루이 9세(Saint Louis, 성 루이)가 왕위에 올라 카페 왕조의 황금기를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