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우베 프리드리히센(Uwe Friedrichsen)은 경제 범죄 수사 시리즈 '슈바르츠, 로트, 골트(Schwarz, Rot, Gold)'에서 백색 범죄자를 추적했고, 함부르크 연극 무대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으며, TV 수사관 '콜롬보'의 더빙 목소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6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우이자 성우로서 그가 해보지 않은 일을 찾아보기란 어렵습니다. 수많은 연극 무대와 텔레비전 작품에 출연한 것은 물론,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에 참여했고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에도 몸담았습니다. 우베 프리드리히센은 2016년 4월 30일 향년 81세를 일기로 함부르크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우의 길로
프리드리히센은 1934년 5월 27일 알토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알토나는 아직 독립 도시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속해 있었으며, 오늘날에는 함부르크의 한 구역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일부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칼텐키르헨의 조부모님 곁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저지독일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첫 무대 경험을 쌓은 뒤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연기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아 평생교육센터의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에도 합류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함부르크의 한 도자기 제조업체에서 상업 견습 과정을 이수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연극에 대한 사랑이 언제나 더 컸습니다. 결국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립 연기 훈련 비용을 스스로 마련했고, 젊은 연극 청년은 항구 육체노동과 신문 배달 등의 일자리로 필요한 돈을 벌었습니다.
1956년 '서임': 그륀트겐스의 발탁
1953년 프리드리히센은 마르쿠스 숄츠와 함께 함부르크에서 '테아터 53(Theater 53)'을 설립하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을 각색한 작품 등을 직접 공연했습니다. 이 활동을 계기로 함부르크 카머슈필레(Hamburger Kammerspiele)의 대표 이다 에레가 그에게 주목했고, 1955년 그를 극단으로 영입했습니다.
이듬해인 1956년, '기사 서임'에 비유될 만한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총감독이던 구스타프 그륀트겐스(Gustaf Gründgens)가 프리드리히센을 독일 연극의 명문 무대인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Deutsches Schauspielhaus)로 데려왔고, 그는 1968년까지 그곳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정식 계약 외에도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던 그는 수많은 다른 극장 무대에도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세서미 스트리트부터 '그로스슈타트레비어'까지
초기 영화 역할 중 하나도 이 시기에 나왔습니다. 프리드리히센은 1960년 그륀트겐스가 연출한 전설적인 '파우스트(Faust)' 영화판에서 학생 역을 맡았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일 자체를 즐기던 그는 1968년 에드거 월러스 원작 영화 '소호의 고릴라'에서 세르잰트 페퍼 역으로도 등장했습니다.
이후 그는 NDR의 경제 범죄 시리즈 '슈바르츠, 로트, 골트'에서 세광 조사관 한스 잘루스코프스키 역으로 더욱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어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세서미 스트리트'에 출연했고, 1990년대 초에는 가족 서사극 '오펜 운트 에를리히'에서 오펜 시장 역을 연기했습니다. 2006년 12월부터는 ARD 저녁 시리즈 '페르보테네 리베(금지된 사랑)'의 여러 에피소드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ZDF의 '트라움쉬프(꿈의 배)'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고, 2010년에는 NDR '그로스슈타트레비어'에 게스트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텔레비전 활동과 병행하여,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를 떠난 뒤에는 프리랜서 배우로서 계속해서 연극 무대에 섰습니다. 1980년대에는 함부르크 탈리아 극장에서 작품 연출을 맡는 등 무대 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카를 마이, 비틀스, 할리우드를 잇는 목소리
프리드리히센은 무대와 촬영장 밖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했습니다. 1964년 카를 마이의 '데어 슈트(Der Schut)'에서 악역 낭독을 맡으며 더빙 및 라디오 드라마 성우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68년에는 비틀스 애니메이션 '옐로 서브마린'에서 링고 스타의 목소리를 담당했고, TV 수사관 '콜롬보'의 한국어가 아닌 독일어 더빙을 맡았으며, 1987년부터 1998년까지는 할리우드 액션 시리즈 'Lethal Weapon' 4부작 전편에서 대니 글로버의 더빙을 맡았습니다.
뛰어난 음성은 그에게 가수로서의 무대도 열어주었습니다. '시카고'(1976~1977)부터 '마이 페어 레이디'(1995)까지 뮤지컬 주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밀라노 스칼라 극장과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도 초청되어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 아래 가곡 연작을 낭송했습니다. 또한 직접 샹송을 작사·작곡하고, 투홀스키, 링겔나츠, 캐스트너 등의 텍스트로 문학 낭독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사회 공헌으로 받은 연방 공로십자훈장
프리드리히센은 예술적·사회적 공헌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사회 문제에 꾸준히 헌신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4년에는 연방 공로십자훈장을, 2003년에는 함부르크 시가 수여하는 비어만-라첸 메달을 받았습니다. 1990년대 초 암 판정을 받은 후에는 활동량을 다소 줄였습니다. 북독일이 배출한 진짜 대중적 배우였던 그는 81세를 일기로 고향 함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