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봄, 독일 하노버의 라이네 강에서 무려 500구에 달하는 인체 잔해가 발견되며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경찰은 연쇄살인범 프리츠 하르만(Fritz Haarmann)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강한 압박 속에 그는 결국 자백합니다. 하르만은 1925년 4월 15일 처형되었습니다.
글: Levke Heed, NDR.de
1924년 봄, 하노버는 숨을 죽였습니다. 라이네 강에서 놀던 아이들이 인간의 두개골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조사가 진행되면서 최소 22명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500개의 신체 부위가 확인되었습니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이 소름 끼치는 발견의 배후에는 누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도시를 뒤덮었습니다. 조사 결과 두개골은 모두 젊은 남성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동성애 연쇄살인범의 존재가 의심되기 시작합니다.
수많은 청년들의 실종
1918년부터 하노버 경찰은 아들이 실종됐다는 부모들의 신고를 반복적으로 접수해 왔습니다. 전후 혼란기의 하노버 기차역은 노숙자, 밀수꾼, 매춘부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프리츠 하르만이 1918년 수사관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곳도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그는 낯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1879년 10월 25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 “프리츠” 하인리히 칼 하르만(Friedrich “Fritz” Heinrich Karl Haarmann)은 어린 시절 이미 “소년에 대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전력이 있었습니다. 이후 심리적 문제로 군 복무에서 제대했고, 사소한 범죄와 아동 성학대로 여러 차례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경찰이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에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고, 추가 제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르만이 1918년부터 경찰의 정보원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스 그란스(Hans Grans)와 함께 고기와 중고 의류를 거래했습니다. 그란스는 1919년, 17세 때 하르만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우연한 만남으로 하르만 체포
1924년 6월, 하르만은 다시 하노버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커트 프롬(Kurt Fromm)이라는 청년과 다툼을 벌였고, 두 사람 모두 경찰에 연행됩니다. 당시 라이네 강에서 발견된 두개골을 조사하던 형사는 하르만을 알아보고 즉시 체포영장을 발부합니다. 하르만은 시내에서 80여 명의 남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유명 인사였기 때문입니다.
수사관들은 로테 라이레 2번지(Rote Reihe 2)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수색하던 중 젊은 남성들의 옷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추가 단서를 찾고자 주민들에게 분실물 신고를 요청했고, 증인 진술에서 구체적인 실마리가 나옵니다. 한 여성은 실종된 아들의 재킷을 어떤 젊은 남성이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데, 그 남성은 이전에 하르만에게서 옷을 구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스 그란스 역시 의심을 받게 됩니다. 그란스가 경찰서에서 심문을 기다리는 동안, 한 어머니가 그란스가 입고 있는 양복이 자신의 실종된 아들의 것임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란스는 하르만에게서 영수증과 함께 옷을 구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의심스러운 경찰 수법
프리츠 하르만(가운데)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에서 그는 수갑을 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서에도 불구하고 하르만과 그의 살인 공범을 유죄로 만들 증거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의심스럽고 불법적인 수단에 의존합니다. 네 개의 두개골이 하르만의 감방 구석에 놓이고, 눈구멍은 붉은 종이로 가려진 채 그 뒤에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뼈로 만든 자루도 감방 구석에 두었습니다. 하르만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자신을 데려가리라 확신했습니다. 또한 그는 심문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은 1990년대에 당시 형사 헤르만 랑게(Hermann Lange)의 회고록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만약 이러한 심문 방식이 더 일찍 공개되었다면 경찰은 하르만과 그란스를 석방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합니다. 1924년 7월 1일, 44세의 하르만은 마침내 자백했습니다. 그는 “성적 흥분 상태”에서 20명이 넘는 청년들을 살해했다고 인정했지만, 정확한 피해자 수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형 소년들”이라 불렀던 피해자들을 무료 식사를 미끼로 아파트로 유인해 성관계를 가진 뒤 물어 목을 죽였습니다. 이후 시신을 토막 내 라이네 강에 버렸습니다.
경찰은 광범위한 수색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해자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잔혹한 의혹은 계속됩니다. 하르만이 피해자들의 유해를 이익을 위해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프리츠 하르만에게 선고된 사형
정신 감정 결과 하르만은 완전한 형사 책임 능력이 있는 것으로 판정됩니다. 그와 한스 그란스에 대한 재판은 대중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1924년 12월 4일 시작되었습니다. 여론의 압박은 컸습니다. 가해자는 최대한 빨리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2월 19일, “하노버의 정육점”이라 불린 프리츠 하르만은 24건의 살인 혐의로 단두대에 의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1925년 4월 15일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어 괴팅겐 대학 병원에서 포르말린 용액 속에 거의 90년간 보관되었으며, 2014년에야 화장되어 괴팅겐 묘지에 익명으로 안장되었습니다.
한스 그란스는 피해자들을 하르만에게 소개한 뒤 사망자의 옷을 팔았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그란스는 연인의 살인 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살인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는 사형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란스 사건은 놀라운 전환을 맞이합니다. 하르만은 구치소에서 경찰 본부로 이송되던 차안에서 그란스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창밖으로 던졌습니다.
이 편지는 “하노버어 알게마이네 차이퉁(Hannoversche Allgemeine Zeitung)”에 전해져 게재되었습니다. 하르만은 편지에서 그란스를 변호했습니다. “그란스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르만은 자신이 복수심으로 그를 고발했으며, 심문 과정에서 그렇게 진술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썼습니다. 이후 한스 그란스에 대한 재판은 1926년 다시 열렸고, 그는 결국 공범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르만은 여전히 화제의 인물
하르만 사건은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데어 토트마허’에서 하르만을 연기한 괴츠 조지(Götz George)의 작품도 그중 하나입니다.
“나는 클라게스마르크트에서 처형되고 싶습니다. 내 무덤에는 이렇게 적혀 있겠지요. ‘대학살자 하르만이 잠들다’. 내 생일에는 한스가 와서 화환을 바칠 겁니다.” 재판 참관인 테오도어 레싱(Theodor Lessing)은 피고인의 이 말을 수첩에 기록했습니다. 프리츠 하르만에 따르면 그는 재판 과정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조용히 죽었다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중국, 일본, 터키까지 모두가 나를 알고 있습니다.”
“기다려라, 하르만이 곧 네게도 올 것이다. 작은 식칼을 들고 소시지를 만들어 주마”라는 히트곡은 하노버에서 벌어진 사건을 상징하는 끔찍한 기념물이 되었습니다. 프리츠 랑(Fritz Lang)의 1931년 영화 ‘M - Eine Stadt sucht ihr Mörder’와 괴츠 조지 주연의 오스카 후보작 ‘데어 토트마허(Der Totmacher, 1995)’ 역시 이 연쇄살인범의 섬뜩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논란을 일으킨 강림절 달력
2009년 하노버 강림절 달력에는 연쇄살인범 프리츠 하르만이 얼음 조각으로 표현되어 등장했습니다(가운데).
하노버의 강림절 달력은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거리였습니다. 빌헬름 부슈(Wilhelm Busch)와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같은 저명 인사들과 함께, 2007년판 달력에는 처음으로 도끼를 든 프리츠 하르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반응은 도시 경계를 넘어 격렬했습니다. 하노버 관광청은 협박성 이메일을 받았고, 제작자는 신성모독자로 비난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르만은 오늘날까지 달력에, 비록 숨겨진 형태이기는 하지만,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방문 명소: 하르만의 감방
하르만 사건은 니엔부르크에 있는 니더작센 경찰 박물관에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르만의 감방을 복원한 전시를 볼 수 있으며, 하르만이 피해자를 해치는 데 사용한 실제 식칼과 가해자의 경찰 신체사진을 촬영한 카메라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