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리하르트 그루너(Richard Gruner): 출판사 그루너+야르를 만든 '빅 G'의 인생

출판사 경영자, 투자자, 억만장자. 리하르트 그루너(Richard Gruner)는 1965년 함부르크에서 그루너+야르(Gruner + Jahr) 출판사를 공동 설립했고, 이 회사는 오늘날까지도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루너는 95년 전, 1925년 12월 25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글: 이레네 알텐뮐러(Irene Altenmüller), NDR.de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큰 출판사 중 하나로 성장한 그루너+야르의 탄생은 의외로 소박했습니다. 1965년 초여름 어느 날, 딸기 케이크와 크림이 오른 자리에서 리하르트 그루너, 존 야르(John Jahr), 게르트 부처리우스(Gerd Bucerius) 세 사람은 함부르크 알스터크루크하우세에 있는 야르 가문의 정원에서 회사 설립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경영 파트너였지만 회사 이름에는 두 사람의 성만 들어갔습니다. 야르의 아들 존은 2005년 인터뷰에서 "세 이름을 다 넣으면 발음이 좋지 않다는 데 의견이 모여, 부처리우스가 이름을 빼기로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악셀 슈프링어에 맞선 균형추

경영진 3인방(왼쪽부터): 게르트 부처리우스, 리하르트 그루너, 존 야르. 1969년, 독일 최대 출판사 중 하나를 이끌던 모습입니다.

설립 계약의 목표는 당시 독일 언론계를 지배하던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 출판사에 대항하는 균형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는 직원 수만 4,100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출판사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 외에도 '브리기테(Brigitte)', '쇠너 보넨(Schöner Wohnen)', 그리고 무엇보다 발행 부수 약 200만 부를 기록한 '슈테른(Stern)' 등 인기 잡지들을 발행했습니다.

시작은 '슈테른' 인쇄에서

리하르트 그루너의 기업가적 성공은 초기부터 '슈테른'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홍보 담당자이자 발행인인 헨리 난넨(Henri Nannen)은 1948년부터 자신의 잡지를 그루너의 인쇄소에서 찍었는데, 당시 그 현장을 이끌던 사람이 바로 그루너였습니다. 1925년 12월 25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1946년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21세의 나이에 이체호(Itzehoe)에 있던 아버지의 인쇄소를 물려받아 운영했습니다.

1950년 그루너는 난넨의 출판사 지분 12.5%를 인수했습니다. 이후 추가 지분을 매입한 홍보 담당자이자 '디 차이트' 창립 멤버인 게르트 부처리우스가 사업 파트너로 합류했고, 헨리 난넨은 잡지 편집장 자리를 지켰습니다. 젊은 독일 연방공화국 최초의 여성 잡지 '콘스탄체(Constanze)'와 인기 소비자 잡지 '쇠너 보넨'을 만든 존 야르도 고객이자 동업자로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그루너는 이후 몇 년간 자신의 회사를 독일 최고 수준의 인쇄 기업으로 꾸준히 확장해 나갔습니다.

루돌프 아우구슈타인과의 갈등

1961년 그루너는 '슈피겔(Der Spiegel)' 출판사 지분 25%를 보유한 파트너이자 전무이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5년 그루너+야르가 설립된 후, '슈피겔'의 발행인 루돌프 아우구슈타인(Rudolf Augstein)은 두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을 우려해 그를 직위에서 물러나게 하려 했습니다. 분쟁은 끝내 법정까지 가졌고, 그루너는 1969년 2월 자신이 보유한 '슈피겔' 지분을 4,200만 독일 마르크에 아우구슈타인에게 매각했습니다.

동시에 그루너는 자신이 세운 회사의 전략적·정치적 방향성 문제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뮌헨 출판사 킨들러&시어마이어(Kindler & Schiermeyer) 인수에는 반대 입장이었지만 뜻을 관철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산하 일부 잡지들조차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1969년 그는 '슈테른'이 "서독 최초의 편집 공동체가 되는 추세"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루너-야르-부처리우스 3인 경영 체제 내부에 위기가 조용히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직접 세운 출판사를 떠나다

1968년 운동과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새로운 사회자유주의 정부 등 연방공화국의 정치적 변화는 그루너에게 깊은 불안감을 안겼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결론을 내립니다. '슈피겔' 지분을 매각한 지 몇 주 만에, 그루너는 그루너+야르 지분 역시 약 1억 8천만 독일 마르크에 매각했습니다. 인수자는 귀터스로(Gütersloh)의 미디어 그룹 베르텔스만(Bertelsmann)이었고, 이 거래는 베르텔스만의 그루너+야르 진입을 확정지었습니다. 1973년에는 부처리우스 역시 출판 지분을 이 그룹에 넘겼습니다.

리히텐슈타인으로의 은둔

2006년, 그루너는 함부르크에서 헨리 난넨 상(Henri Nannen Prize)을 수상했습니다.

그루너는 직업적으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연방공화국을 떠났습니다. 1968년 스위스로 이주한 뒤, 1959년 결혼한 아내 플로라 프라인 폰 랑엔(Flora Freiin von Langen)과 함께 1969년 리히텐슈타인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회사 이름에서 자신의 성을 지우려 여러 차례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리히텐슈타인에서 투자자로 활동하며 수익성 좋은 사업을 가려내는 안목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열렬한 취미 비행사이기도 했던 그루너는 1970년대 미국의 항공사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상당한 규모였던 재산은 계속 불어나, 2002년에는 약 10억 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 중 한 명이었지만, 언론에 알려진 그의 모습은 많지 않았습니다. 2006년, 그는 헨리 난넨 상 수여식을 위해 함부르크를 다시 찾았습니다. 리하르트 그루너는 1925년 12월 25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2010년 1월 13일 리히텐슈타인 파두츠(Vaduz)에서 84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그루너+야르라는 출판사 이름 속, 대문자 'G'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