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올브라흐트(1459~1501): 폴란드 야기에워 왕조의 국왕

마르첼로 바치아렐리(Marcello Bacciarelli)가 그린 얀 올브라흐트 초상화.
얀 올브라흐트(Jan Olbracht, 1459~1501)는 1492년부터 1501년까지 폴란드를 통치한 야기에워 왕조 출신의 국왕이다.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에워니치크(Kazimierz IV Jagiellończyk)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엘주비타 라쿠샨카) 사이에서 태어난 세 번째 아들로, 1459년 12월 27일 크라쿠프에서 출생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역사가 얀 드우고시(Jan Długosz)와 이탈리아 출신 인문주의자 필리프 부오나코르시(칼리마코스)에게 교육을 받았다.
1484년 형인 카지미에시 공작이 요절하자, 아버지는 그를 폴란드 왕위 계승자로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1490년에는 형 브와디스와프(Władysław)와 헝가리 왕위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으나 패배했고, 그 보상으로 그워구프(Głogów)를 받아 1491년부터 1498년까지 공작으로서 다스렸다.
즉위와 통치 초기
1492년 카지미에시 4세가 사망하자, 얀은 형제들과 플로츠크 공작 야누시 2세를 누르고 폴란드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했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원과 귀족 및 도시 중산층의 호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1492년 9월 30일 크라쿠프에서 대관식을 거행했으며,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권은 동생 알렉산데르에게 넘어갔다.
통치 초기에는 자토르 공국을 폴란드에 합병하고 플로츠크를 회복하는 등 영토 확장에 성공했으며, 1499년에는 동생과 함께 빌뉴스에서 새로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조약을 체결했다.
귀족 중심의 정치
얀 올브라흐트는 재위 기간 내내 귀족(슐라흐타)의 지위를 크게 강화했다. 1493년에는 농민의 이주의 자유를 제한했고, 1496년에는 고위 성직에 귀족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피예트르쿠프 특권'을 반포했다. 동시에 도시 시민들이 토지를 매입하는 것을 금지하여 신분 질서를 더욱 고착시켰다.
몰다비아 원정의 참패
얀은 터키의 세력권에 들어간 몰다비아를 폴란드의 속국으로 만들려 했다. 1497년 킬리야와 비아워그루드(체타테아 알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을 일으켰고, 동생 지그문트를 몰다비아 왕좌에 앉히려는 계획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원정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고, 후퇴 과정에서 코즈민 전투에서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 참패는 "올브라흐트 왕 아래에서 귀족들이 죽었다"는 속담을 낳았다. 터키와의 관계 악화 여파로 1498년에는 터키군의 대대적인 침공까지 겪어야 했다.
말년과 죽음
얀 올브라흐트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인물로 유명했다. 잘 먹고 편안하게 사는 것을 좋아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유희를 찾았고,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연인을 두었다. 1497년경 연인들 중 한 명에게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병(매독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함)이 결국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는 1466년 토룬 조약의 조건을 부정하기 시작한 튜턴 기사단과의 전쟁을 준비하던 중, 1501년 6월 17일 토룬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