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제임스 크뤼스(James Krüss)는 전후 독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아동도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1926년 5월 31일 북해의 작은 섬 헬골란트(Helgoland)에서 태어나, 바다 내음 가득한 동화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글: 아네트 볼랜드(Anette Woland)
'랍스터 절벽 위의 등대', '나의 증조할아버지와 나', '팀 탈러 또는 팔린 웃음' — 헬골란트 출신 제임스 크뤼스(1926~1997)는 수많은 성공적인 아동·청소년 도서를 남겼습니다. 크뤼스는 헬골란트에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냈으며, 미하엘 엔데(Michael Ende), 오프리트 프로이슬러(Otfried Preußler),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ästner)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야기꾼이자 운율의 명수로서, 전후 독일 동화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환상적인 모험의 무대가 된 헬골란트
크뤼스의 아버지는 전기 기술자였고,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는 헬골란트에서 바닷가재 어부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16세의 제임스 크뤼스는 전쟁 때문에 섬을 떠나야 했고, 이후에는 단기 방문객으로만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많은 책과 노래, 연극, 라디오 드라마, 영화, 풍자 작품 속에서 헬골란트는 언제나 환상적인 모험과 재기발랄한 상상력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공간이 좁은 작은 섬에서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 제임스 크뤼스
뤼네부르크에서의 교사 연수
헬골란트에서 철수한 뒤, 젊은 크뤼스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룬덴, 라체부르크, 브라운슈바이크에서 교사 연수 과정을 밟았지만, 1944년 독일 공군에 징집됩니다. 다행히 그가 부대에 배속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습니다. 크뤼스는 처음에 쿠크스하펜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고, 이후 뤼네부르크 교육대학(Lüneburg University of Education)에서 수학하며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단에 서는 대신 라디오와 언론에 글을 쓰는 길을 택했습니다. 함부르크 근교 라인베크에서는 망명한 헬골란트 주민들을 위한 소식지 격인 잡지 '헬리고란트(Heligoland)'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먼 북쪽에서 온 이 청년은 마침내 '남쪽으로 도약'합니다. 뮌헨 근교에 정착한 그는 에리히 케스트너와 친구가 되었고, 케스트너는 그에게 동화 집필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타게스샤우(Tagesschau)' 낭독으로 일약 유명해지다
첫 번째 큰 성공은 1956년 출간된 동화 '랍스터 절벽 위의 등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독일어판보다 먼저 유고슬라비아에서 키릴 문자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며, 독일에서는 독일 청소년도서상 후보 목록에 올랐습니다. 4년 후, 그가 '타게스샤우'에서 '나의 증조할아버지와 나'를 직접 낭독하게 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유명 인사가 되었고, 이 작품으로 독일 청소년도서상을 수상했습니다. 경력 중 여러 상을 받은 것은 물론, 1968년에는 전체 작품의 공로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메달(Hans Christian Andersen Medal)을 받았습니다. 아동 문학 분야의 이 국제적 상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작은 노벨상'이라고도 불립니다.
'팀 탈러(Timm Thaler)' — 선이 악으로 변해갈 때
크뤼스는 다른 면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인기 가사와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했고, 민요와 시를 수집했으며, 아동·청소년 문학에 관한 이론적 저술도 남겼습니다. 한편 여행을 즐기던 그는 네덜란드, 헝가리, 그리스, 영국,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찾았고, 유고슬라비아에는 특별히 자주 들렀습니다. 1961년에는 처음으로 고향 섬 헬골란트를 방문해, 오랫동안 손질해 온 원고를 다듬었습니다. 그 결실인 '팀 탈러 또는 팔린 웃음'은 1962년 출간되었고, 1978년에는 호르스트 프랑크(Horst Frank)와 토마스 오르너(Thomas Ohrner) 주연으로 TV 드라마로 제작되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환상적인 이야기에는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도 녹아 있습니다. 크뤼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아이들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좋은 것이 언제부터 나빠지기 시작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란카나리아에서의 30년
1966년, 40세의 크뤼스는 파트너와 함께 그란카나리아(Gran Canaria)로 이주해 또 하나의 섬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는 이력서에 "아프리카 해안으로 점프(JUMP TO THE AFRICAN COAST)"라고 대문자로 적었고, 그 후로는 "유럽 방문 전용" 신세가 되었다고 농담처럼 회고했습니다. 예컨대 50번째 생일은 헬골란트에서, 그리고 동독 베를린의 쾨페니크 성(Köpenicker Schloss)에서 축하했습니다. 그의 많은 책이 동독에서 출간되었고 일부는 그곳에서 먼저 나오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사랑하던 이 작가는 1984년 심장 발작 이후 보다 조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제임스 크뤼스는 1997년 8월 2일, 71세를 일기로 그란카나리아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같은 해 9월 27일, 그의 유해는 헬골란트 앞바다에 묻혔으며, 뮌헨의 국제청소년도서관(International Youth Library)이 그의 문학 유산을 위탁받았습니다.
책으로 읽고 목소리로 듣는 크뤼스
2007년부터 헬골란트의 작은 박물관이 시인을 기리고 있습니다. 북해홀(Nordseehalle) 앞 박물관 마을에 복원된 두 채의 '랍스터 판잣집'이 그것입니다. 한쪽 부스에서 방문객들은 크뤼스의 책을 펼쳐보며 원본 라디오 녹음에 담긴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수공예 체험, 그림 그리기, 독서 코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 채는 크뤼스가 새롭게 터전 삼은 그란카나리아의 서재 모습을 재현한 공간으로, 작가가 직접 쓴 편지와 엽서, 사진,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의 삶과 문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