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스 보트(Das Boot)』의 캡틴레우트난트 톰센 역과 『양철북(Die Blechtrommel)』의 트럼펫 연주자 마인 역으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남긴 오토 산더. 하노버 태생의 그는 1941년 6월 30일, 80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것이다. 2013년 9월 12일 베를린에서 별세한 이 명배우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좋은 빈티지 와인 같은 해" 1941년생 배우들
"나이는 와인과 같아서 좋은 빈티지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1941년은 배우들에게 더없이 좋은 해였다. 브루노 간츠, 위르겐 프로흐노프, 그리고 오토 산더까지 당대의 거장들을 배출했으니 말이다.
파이네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아이
1941년 6월 30일 하노버에서 태어난 산더는 붉은 머리, 하얀 피부, 주근깨 탓에 당시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조부는 요람을 들여다보며 "머리가 빨갛네, 자라면 나아지려나"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본인은 몰랐지만, 파이너 신문사 주최 '가장 아름다운 아기'로 뽑히기도 했다. 니더작센의 작은 도시 파이네에서 장남이자 기다리던 후계자로 자란 그는 이후 두 남동생과 여동생을 얻으며 화목한 유년기를 보냈다.
작은 도시의 시선 속에 자란 그는 평생 수줍음과 낮은 자존감을 안고 살았다. "사람들이 내 연기에 뭐라 할까"라는 고민은 배우가 된 후에도 그를 따라다녔다.
연극 무대, 일찌감치 운명이 되다
아헨 인근 오버브루흐에서 3년, 1954년 카셀로 이주한 뒤가 그의 청춘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재즈 클럽을 만들고, 모페드를 타며, 친구들과 실존주의 연극을 올리고, 도큐멘타 예술감독들과 토론했다. "당시 카셀에선 아방가르드하기가 꽤 쉬웠다"고 회고한다. 백색 분장에 빨간 입술, 연미복 차림으로 마르셀 마르소를 흉내 내던 팜플렛 광대 시절, 1950년대 중반 카셀 국립극장 보조출연자로 첫 무대를 밟았다.
우여곡절 끝에 배우의 길로
아버지는 연극을 '먹고살기 힘든 예술'로 여겨 뮌헨대 연극학·독문과 진학을 권했다. 교장 선생님을 꿈꾸던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산더는 대학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명문 오토 팔켄베르크 연기학교 입학시험을 단번에 통과하며 본격적인 배우 수업을 시작했다.
뒤셀도르프, 하이델베르크, 그리고 베를린으로
1965년 뒤셀도르프 캄머슈필레에서 월 430마르크로 데뷔, 이듬해 <『요엘 브란트』>로 첫선을 보였다. 하이델베르크 시립극장에서 클라우스 파이만과 호흡을 맞춘 뒤, 더 큰 무대를 찾아 베를린 폴크스뷔네로 향했다. "무대가 두 배, 극장과 도시가 열 배 커졌다"며 월급도 1,050마르크로 뛰었다. 파이만의 <『일요일의 바다』>로 돌파구를 연 그는 페터 슈타인의 발탁으로 새로 창단한 샤우뷔네 앙상블에 합류, 1970년대 브루노 간츠 등과 함께 세계적 명성을 쌓았다. 1979년 앙상블을 떠난 뒤엔 보쿰, 빈, 베를린의 주요 무대에서 페터 차덱, 뤼크 본디, 레안더 하우스만 등 거장들과 작업했다.
모니카 한센, 벤·메레트 베커… 또 하나의 가족
삶의 터전은 늘 베를린이었다. 1973년 동료 배우 모니카 한센과 그녀의 자녀 벤, 메레트 베커와 함께 빌머스도르프에 둥지를 틀었다. 붉은 머리와 창백한 피부가 닮은 벤 베커를 처음 본 순간 "내면 깊은 곳에서 우린 연결돼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고 한다. 산더는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잠옷 입은 남자" - 영화 데뷔와 코미디에의 도전
1960년대 단편과 졸업영화로 영화에 발을 들였지만, 당시만 해도 연극배우의 영화 출연은 금기시됐다. 무거운 연극과 달리 코미디를 사랑했던 그는 "관객을 웃기는 게 가장 진지한 일"이라며 저평가받던 장르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1981년 <『잠옷 입은 남자(Der Mann im Pyjama)』>로 에른스트 루비치 상을 받으며 그 진가를 입증했다.
천사 카시엘 - 비극적 희극 인물의 대명사
대중에게 더 각인된 건 사회 주변부에서 고군분투하는 비극적 희극 인물들이다. 볼프강 페터젠의 <『다스 보트』>에선 절망하는 톰센 대위, 폴커 슐렌도르프의 <『양철북』>에선 영원히 취한 트럼펫 연주자,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선 고뇌하는 천사 카시엘로 분했다. 2007년 개봉 25주년 기념 골든 카메라 상을 공동 수상하며 그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1990년대엔 브란덴부르크 지방을 배경으로 한 <『폴라이루프 110』> 시리즈의 란스키 역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모니카 한센, 벤 베커와 함께 출연한 첫 에피소드 <『죽은 선로』>는 베른트 뵐리히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 그림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잘 걸린 목소리" - 성우·낭독가로서의 또 다른 전성기
무대와 스크린을 넘어 그의 목소리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 스스로 "낮고 부드러우며 깊이를 알 수 없는, 한마디로 '잘 걸린' 목소리"라 표현한 그만의 음색은 성우, 오디오북, 낭독 무대에서 독보적이었다. 2010년 독일 낭독상 수상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7년 암 투병 소식을 알렸으나 회복, 2011년 노년 코미디 <『지평선까지, 거기서 좌회전!』> 촬영장으로 복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산더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외모로는 남자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식인이거나 광대가 될 뿐"이라고 자조했다. 하지만 그는 둘 다 해냈고, 세상은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