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함부르크가 낳은 전설의 도서 수집가이자 미술사학자

유대계 미술사학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는 1866년 6월 13일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에서 은행가이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평생을 들여 구축한 '문화과학도서관(Kulturwissenschaftliche Bibliothek Warburg, KBW)'은 오늘날까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도서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글: 마이클 마렉(Michael Marek)

"마음은 함부르크 사람의 것, 혈통은 히브리인의 것, 정신은 피렌체의 것" — 그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고 전해집니다. 태어난 지 150년이 넘은 지금도 바르부르크는 유럽 미술사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며, 그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이 도서관이었습니다.

바르부르크 도서관,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적 중심지

1926년 5월 1일, 바르부르크의 평생 업적이 담긴 도서관은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의 기념 강연과 함께 정식 문을 열었습니다. 함부르크 에펜도르프 하일비히슈트라세 116(Heilwigstraße 116)에 마련된 바르부르크 저택은 그의 생전에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의 지적 중심지로 불렸습니다.

카시러와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같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이곳을 드나들었고, 연구진 대부분이 유대계 학자였다는 점 역시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그가 말년에 구상한 역사적 그림 지도책 《니모시네(Mnemosyne)》 아틀라스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미술사학자이자 런던 워버그 연구소 전 소장 찰스 호프(Charles Hope)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연구소의 핵심 멤버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유대교를 지키는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성장 환경이 특정 가치관을 심어준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정작 본인들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우울과 집념의 학문

바르부르크는 미국으로 건너간 가족과 남동생 막스(Max)가 운영하는 은행의 재정 지원 덕분에 평생 경제적 걱정 없이 학문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문화사가이자 독립 연구자로 살았지만, 친구들과 동시대인들은 그를 심리 치료가 필요할 만큼 예민하고 우울한 성향의 인물로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전기를 남긴 고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히(Ernst Gombrich)는 "바르부르크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지만, 스스로의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던 위대한 학자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도서관 설립에 대해서는 "그는 언제나 특히 과학의 영역에서 마술적 태도에서 이성적 태도로 나아가는 발전을 추구했고, 도서관은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치 집권, 그리고 런던으로의 이주

1929년 10월 26일 바르부르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문화과학도서관은 전설적인 명성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자(나치)의 권력 장악으로 KBW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게 되면서, 도서관은 1933년 런던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 소장본들은 '더 워버그 연구소(The Warburg Institute)'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문학 도서 컬렉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