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 1668~1733)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건반악기 연주의 거장입니다. '쿠프랭 가문'은 17~18세기 프랑스 최고의 음악 가문 중 하나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프랑수아는 가문의 명성을 가장 빛낸 인물입니다. 클라브생(하프시코드) 작품의 수와 질적인 면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베르사유 궁전의 '국왕 저녁 모임'에서 세속 음악을 연주하며 왕실의 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업적이 세속 음악에만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성주간(聖週間) 전례를 위해 작곡된 성악곡 『르송 드 테네브르(Les Leçons de Ténèbres)』는 그가 남긴 종교 음악의 정수로 평가받습니다.
프랑수아 쿠프랭의 생애
프랑수아 쿠프랭은 1668년 11월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악기 장인'이었고, 아버지 샤를은 생제르바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오를레앙 공작부인의 클라브생 교사였습니다. 덕분에 그는 글을 배우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음악에 접하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수아는 겨우 열한 살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명망 높던 오르가니스트 미셸 리샤르 들라랑드(Michel Richard de Lalande)가 후견인 역할을 맡아 계약서에 서명해 주었는데, 성루이·생앙투안·생장드그레브 교회에 파견되어 지나치게 바빴던 들라랑드는 실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지만, 프랑수아가 성년에 이르면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 실력을 갈고닦아야 했던 프랑수아는 생자크라부셰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이자 국왕 예배당 네 명의 오르가니스트 중 한 사람이었던 자크 토믈랭(Jacques Thomelin)에게 사사받았습니다. 1685년, 마침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생제르바이 교회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정식으로 취임합니다. 1690년에는 오르간을 위한 두 개의 미사로 이루어진 곡집에 대한 특허권을 얻었고,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루이 14세는 1693년 그를 왕립 예배당의 분담 오르가니스트(1월 담당)로 임명했습니다.
쿠프랭은 여러 직무를 소박하고 성실히 수행했지만, 권모술수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음악가들이 탐내던 '국왕 클라브생 연주자' 자리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크게 인기 있는 클라브생 교사였으며, 부르고뉴 공작과 여러 왕녀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1696년에는 문장(紋章)을 하사받았고, 1702년에는 라테란 기사단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섭정 시대인 1717년에는 '국왕 일반 클라브생 연주자'로 임명되었고, 1723년에는 생제르바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사촌 니콜라에게 넘겼습니다. 건강이 허약해진 그는 1730년 경쟁자였던 마르샹의 아들에게 국왕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내주었고, 1733년 세상을 떠난 뒤에는 딸이 '국왕 클라브생 연주자' 직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세속 음악에서 종교 음악까지
오르가니스트로서 쿠프랭은 한 성부, 두 성부, 세 성부로 된 세속 곡들은 물론 모테트와 마니피카트 같은 종교 곡들을 다수 작곡했습니다. 또한 교구용 미사와 수도원용 미사, 두 개의 오르간 미사를 남겼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성주간 밤 예배를 위해 작곡된 『르송 드 테네브르』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지상의 필멸자가 느끼는 고뇌와 영원한 삶을 향한 기독교 영혼의 확신을 노래 속에 담아냄으로써 비극적 감흥(pathos)을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트리오 및 4중주 소나타인 『라 스탱케르크』와 『라스트레』, 비올을 위한 곡들에도 도전했습니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저녁 모임(soirées d'appartement)'에서는 왕실 콘서트를 위한 곡들을 작곡하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고, 말년의 루이 14세는 매일 이 우아하고 세련된 작품들을 감상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쿠프랭에게 진정한 영광을 안겨준 것은 단연 클라브생 작품들이었습니다. 1707년부터 1730년 사이에 스물일곱 개의 '순서(order)'와 여덟 개의 전주곡을 포함한 네 권의 곡집을 출판했습니다.
사망 후 작성된 유산 목록은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자료입니다. 이를 통해 쿠프랭이 소유했던 악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블랑셰가 제작해 받침대 위에 올려진 대형 클라브생(300 리브르), 니스를 칠한 나무 스피넷 세 대(70 리브르), 비올 두 대와 바이올린 두 대, 플루트 보관함을 갖춘 작은 나무 오르간 등이었습니다.
목록에는 악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페라 악보 스무 권, 모테트 악보 두 권, 칸타타 악보 스물세 권, 소나타 악보 스물세 권, 그리고 마랭 마레와 알비노니 같은 작곡가들의 저술이 있었습니다. 서재에는 클라브생, 비올 및 기타 작품을 모은 백여 권의 악보가 전시되어 있었으며, 그 가치는 약 415 리브르에 달했습니다. 당시 작품들은 구리나 주석판에 새겨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쿠프랭의 판본만 무려 730점이 넘었고 그 가치는 1,500 리브르로 추산됩니다.
프랑수아 쿠프랭의 작품 세계
오늘날 전해지는 쿠프랭의 작품으로는 1690년의 오르간 곡집 외에 독창을 위한 『엘레바시옹(Elevations)』, 수많은 모테트, 그리고 여성 성악가를 위해 작곡된 세 곡의 『르송 드 테네브르』(1714~1715년경)가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높이 평가한 클라브생 곡집 네 권(1713~1730)에는 200곡이 넘는 짧은 소품이 담겨 있으며, 『마리 공주』, 『추수꾼』, 『사랑에 빠진 나이팅게일』처럼 시적인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27개의 '순서(order)'로 묶인 이 곡들은 전통 춤 모음곡의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난 묘사적 페이지들로, 쿠프랭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그의 논저 『클라브생 연주법(L'Art de toucher le clavecin)』(1716~1717)은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의 저작에 필적하는 중요한 문서로 평가됩니다.
실내악 분야에서는 그가 깊이 존경했던 코렐리의 영향을 받은 트리오 소나타, 『왕실 콘서트』(1714~1715년경), 소나타와 트리오 신포니아 모음곡집 『국가들(Les Nations)』(1726), 『비올을 위한 곡들』(1728)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코렐리를 찬양하는 『파르나소스, 즉 코렐리의 신격화』(1724), 룰리를 추모하는 『불후의 룰리 경을 기리는 신격화』(1725), 그리고 '프랑스풍과 이탈리아풍의 융합'이라는 부제가 붙은 『신곡집(Nouveaux Concerts)』(1724)도 포함됩니다.
당시 음악계는 룰리가 상징하는 프랑스 음악파와 코렐리가 대표하는 이탈리아 음악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쿠프랭은 "프랑스 취향과 이탈리아 취향의 만남이야말로 음악을 완전하게 만든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두 양식을 조화롭게 융합한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더 읽을거리
- 올리비에 보몽(Olivier Baumont), 『Couperin, musicien des rois』, 갈리마르, 1998
- 피에르 시트론(Pierre Citron), 『Couperin』, 솔레로, 1996
- CD 『성수요일을 위한 르송 드 테네브르』
- CD 박스셋 『베르사유의 200년 음악』 5번 – 왕실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