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극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 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극오스트리아 황후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1837~1898)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주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내로, 애칭 '시시(Sissi)'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배우 로미 슈나이더가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영화 속 그녀는 왈츠의 리듬이 흐르는 빈을 상징하는 우아한 아이콘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실제 '시시'의 내면은 훨씬 복잡하고 섬세했습니다. 고전 문학과 시에 깊이 매료되어 총명하고 명석한 지성을 지녔던 엘리자베스는,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주변의 누구보다 먼저 직감했습니다. 왕세자 루돌프가 메이어링 사냥 별장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뒤, 그녀 자신도 1898년 9월 10일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의 암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 황후

1837년 12월 24일 바이에른 포센호펜에서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와 루도비카 공작부인의 둘째 딸로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1854년 4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했습니다. 이 혼인에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황제는 이 결혼을 통해 자신이 독일 방계 왕가의 일원이자 독일 연방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한층 강화하려 했습니다. 황제의 어머니인 바이에른의 조피 대공비는 루도비카 공작부인의 언니일 뿐 아니라, 프로이센 왕비와 두 차례에 걸쳐 작센 왕비가 된 자매들의 누이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헝가리 지배 엘리트와 군주를 화해시킨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을 지지하며, 비록 짧지만 의미 있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헝가리와 헝가리어에 대한 그녀의 열정—시시는 부지런히 헝가리어를 익혔고 여러 헝가리인을 시종으로 임명했습니다—은 빈 궁정의 엄격한 궁정 예법, 그리고 고모이자 시어머니인 조피 대공비의 지나친 간섭에 품었던 초기 반감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비엔나 궁정의 반순응주의자

비텔스바흐의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 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극어린 시절 슈타른베르거 호반의 포센호펜에 있던 부모의 시골 저택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자란 엘리자베스는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낭만주의에 매료되었습니다. 기질 면에서 그녀는 상상력이 결여되고 의무에만 몰두하던 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결혼 초기에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며, 세 딸과 왕세자 루돌프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궁정 예식에 대한 혐오감은 엘리자베스가 빈에서, 나아가 부다페스트에서조차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부재를 점점 더 길어지게 만들었습니다. 1870년대 말부터는 아일랜드에서의 승마 사냥에 열정을 쏟았고, 1880년대 후반에는 그리스어를 익혀 고고학 유적지와 신화의 현장을 찾아 여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마침내 코르푸 섬에 아킬레이온 궁을 마련했습니다.

군주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개인 재산을 스위스로 옮기면서, 그녀와 황제의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졌습니다. 1889년 아들 루돌프의 자살은 그녀의 우울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여행의 나날 중이던 1898년, 제네바에서 원래 파리 백작을 암살하려 했던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의 흉기 앞에 그녀가 희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고문헌

- 브리짓 하만(Brigitte Hamann), 『엘리자베스 폰 외스터라이히』, 파야르(Fayard), 1985.

- 장 데 카르(Jean des Cars), 『프랑수아-조제프와 시시』, 페랭(Perrin), 2017.

- 엘리자베스 폰 외스터라이히, 『시시의 시 일기』, 2009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