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에 맞서 사실주의 문학의 기반을 다진 거장으로 평가되며, 1857년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출간이 불러온 스캔들은 그의 이름을 문학사에 굳건히 새기게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주의 소설에서 플로베르는 특정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객관적 시점을 구사했고, 오히려 자신을 고소한 당대 사회의 순응주의를 고발했습니다. 우연을 남기지 않는 철저한 자료 조사, 검증된 문장, 그리고 시대를 앞선 현대성은 그를 '작가'라는 직업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시켰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약력
노르망디 루앙(Rouen)에서 태어난 플로베르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가 자신의 소명임을 확신했습니다.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심한 간질 발작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루앙 근교의 작은 마을 크루아세(Croisset)로 돌아가 작가의 삶에 전념하기로 결심합니다.
첫 장편소설 『보바리 부인』을 완성하는 데 무려 5년이 걸렸고, 1857년 출간과 동시에 큰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풍기문란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작품의 성공은 이미 확실해져 있었습니다.
크루아세의 서재에는 조르주 상드(George Sand)가 자주 찾았고, 젊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그에게서 작법을 배웠습니다. 플로베르는 느리지만 성실한 속도로 꾸준히 집필을 이어갔습니다. 카르타고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살람보(Salammbô, 1862)』, 자전적 색채가 짙은 『감정 교육(L'Éducation sentimentale, 1869)』, 지식에 대한 갈망과 선입견 속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그린 미완성작 『부바르와 페퀴셰(Bouvard et Pécuchet, 1881)』 등이 대표작입니다. 그는 58세의 나이에 지친 몸으로 책상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플로베르의 집필 방식
플로베르에게 글쓰기는 영감이 아니라 노동이었습니다. 집필 전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하게 조사했으며, 끊임없이 원고를 수정하다 보면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글을 큰 소리로 읽어보는 이른바 '외침의 시험(gueuloir)'을 통해 문장의 진위를 가렸습니다.
이처럼 준과학적이라 할 만한 창작 방법과 완벽함을 향한 집요한 추구는 19세기 말 사실주의 문학 전반, 특히 자연주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플로베르의 주요 작품
1839년: 스마르(Smarh, 서사)
1842년: 11월(Novembre, 자서전적 산문)
1857년: 보바리 부인(소설)
1862년: 살람보(역사소설)
1869년: 감정 교육(제2판, 소설)
1874년: 성 안토니오의 유혹(서사)
1874년: 후보자(Le Candidat, 희곡)
1877년: 세 개의 이야기(Trois contes, 단편집)
1881년: 부바르와 페퀴셰(소설, 유작)
1900년: 광인의 회고록(Mémoires d'un fou, 유작)
1911년: 통용 관념 사전(Dictionnaire des idées reçues, 유작)
1914년: 감정 교육(제1판, 소설)
더 읽어볼 자료
- 피에르마르크 드 비아시(Pierre-Marc de Biasi), 『귀스타브 플로베르, 특별한 삶의 방식』, 포켓(Pocket), 2011.
- 베르나르 포코니에(Bernard Fauconnier), 『플로베르』, 폴리오(Folio),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