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는 로마 왕정 시대의 여섯 번째 왕입니다. 그의 이름은 '노예'를 뜻하는 라틴어 serv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노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대 로마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타르퀴니우스 대왕)의 아내이자 귀족인 타나킬(Tanaquil)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됩니다.
불꽃의 예언과 입양
역사가 리비우스가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요람에서 잠든 어린 세르비우스의 머리 위로 불꽃이 후광처럼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신비로운 징조를 목격한 타나킬은 남편을 설득하여 노예의 아들을 마치 친아들처럼 기르도록 했다고 전해집니다.
권력 장악과 통치
결혼을 통해 장인이 된 타르퀴니우스 대왕이 암살당한 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기원전 578년경 민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권력을 차지한 최초의 로마 왕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정복자였던 그는 로마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최초의 경제·행정·군사 제도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경제 및 행정 개혁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최초의 로마 화폐를 제작했고, 시민들을 재산 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계층 구분은 훗날 재산을 기준으로 하는 세금 제도인 '켄수스(census)'의 기초가 되었으며, 백인대(centuria) 단위로 나뉘는 다섯 개의 시민 계급 체계를 낳았습니다.
또한 그는 도시를 팔라티누스(Palatine), 수부라(Suburan), 콜리나(Hill), 에스퀼리누스(Esquiline)의 네 개 부족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을 호민관(tribune)이 관할하도록 했습니다.
암살로 끝난 최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통치는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암살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살해의 배후였던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타르퀴니우스 오만왕), 즉 타르퀴니우스 대왕의 아들이었습니다.

주요 정보
- 활동 시기: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35년
- 신분: 국가 원수
- 직위: 로마의 왕 (제6대)